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고려인, 그들은 누구인가? / 정송남

등록 2013-09-24 20:56

정송남 전남 담양 한빛고 교감
정송남 전남 담양 한빛고 교감
9월16일치 <한겨레>에 실린 카레이스키(고려인) 김발로자씨의 죽음은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진 이주동포의 설움과 고난을 극명하게 보여준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2010년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모국을 찾아왔다. 가죽염색공장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한 그에게 주어진 대가는 시급 4860원이었다. 화학염료의 악취는 폐결핵을 도지게 했다. 아들에게 보낼 돈을 생각해 병원 진료를 미룬 게 화근이 되었다. 결국 병원에 실려 왔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리운 가족을 뒤로한 채 눈을 감았다.

고려인, 그들은 누구인가? 1863년 함경도 농민 14가구가 연해주에 첫 고려인 마을을 형성한 후 조선 말기 가난과 탐학을 피해 러시아로 몰려간 고려인들은 탄광·철도공사 등 노동을 하면서 연해주 수십곳에 고려인촌을 건설하였다. 고려인촌은 을사늑약 이후 의병기지화해 1908년에는 7만여명이 의병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1910년 한일합병으로 국권을 빼앗긴 지식인층의 정치적 망명으로 항일운동이 본격화되었을 때 독립운동의 물적 기반이 되었고, 1919년 국민의회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일본군의 연해주 침략에 한인들을 첩자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고려인 18만명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3000여명의 민족지도자 학살과 2만여명의 희생을 치르며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에서 중앙아시아에 도착해 16년간 집단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민족교육 금지로 민족문화와 언어를 잃어 모국어를 배울 수도 없었다. 1953년 스탈린 사후 고려인 특유의 강인한 개척정신과 영농법으로 중앙아시아 개발에 앞장서 모범 콜호스를 탄생시켰고, 각 분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91년 소연방이 붕괴되자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현재 국내에는 4만명 정도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경기 안산의 땟골마을에 3000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을 비롯해 광주광역시 월곡동에는 1000여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공단 주변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종사하는데 열악한 근무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센터도 없다.

고려인 동포는 1948년 입법의회가 통과시킨 ‘국적에 관한 조례’를 통해 우리 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고려인에게는 국적선택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고, 소연방 해체 후 우리 정부의 이중국적 불허로 다시 신생국들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독일·일본 등이 소연방 해체 후 강제이주된 자국민들을 귀환시켜 포용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고려인들이 조국에 들어오는 기회를 제한하고, 불법체류라는 이유로 추방을 일삼고, 임금체불, 인권유린에도 무관심했다. 2004년 ‘재외동포법’을 개정하여 해외동포의 조국 체류가 자유로우나 유독 고려인 동포에 대해서만 이 법의 전면적용을 유보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2010년 ‘고려인 동포의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으나, 주로 가족 단위로 입국한 고려인들에 대한 교육비나 보육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가난과 학정 그리고 망국의 한을 품고 조국을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 그들은 끝나지 않은 유랑의 역사를 이어가며, 고려인 후손이라는 운명을 저주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조국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항일운동을 가능케 했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그들의 후손들의 왕래와 체류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고국의 품에서 살아갈 ‘천부적 권리’를 위해 정부는 고려인 동포들의 귀환과 안전한 정착을 위한 법적 시행과 제도적 지원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송남 전남 담양 한빛고 교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