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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파벌의 해악과 국회선진화 과제 / 채진원

등록 2013-09-25 19:07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정국 운영이 힘들어지자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한차례 여야 간 공방이 예상된다. 국회선진화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떠오르는 토론거리는 민의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파벌의 해악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작금의 혼란과 파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여야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먼저 민주공화국의 대표자와 국민의 입장에서 각자의 본분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미국 헌법을 만든 제임스 매디슨은 민주공화국 정부가 파벌의 해악으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나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다수파벌이든 소수파벌이든, 파벌이란 국가의 공공선에 역행하는 공통된 열정과 이해관계로 단결·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그는 파벌의 형성은 본성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에 있기 때문에 파벌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파벌의 영향력을 통제하는 쪽에 해법의 무게를 두었다. 그가 제안한 해법은 파벌의 이해를 또다른 파벌의 이해로 견제하고 감시하도록 함으로써, 파벌들이 공공선과 균형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의 핵심적인 장치는 어느 파벌도 공화국 정부의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삼권분립을 채택하는 것과 광역선거구를 통한 공정하고 사심 없는 대표자의 선출이었다. 그는 선출된 대표자가 자유로운 토론과 심의를 통해 소수자의 권리를 배려하고 다수파벌의 전횡을 방지함으로써 스스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다수지배의 원리를 리더십의 덕목으로 활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매디슨의 관점에서 볼 때 원외투쟁이 민주화 이전이나 이후에도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투쟁 수단이 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해 집권당 의원들과 입법부가 장악되어 있는 상황에서 집권여당과의 타협이 되지 않을 경우 국회의 운영을 중단시킴으로써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관행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이 명확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회가 파행할 경우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더더욱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사실상 폐지된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야당의 협조와 도움 없이 법안이나 예산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부재한다. 만약 민주당과의 교착이 장기화된다면 하반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외투쟁의 후유증을 수습하는 방식은 결국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 상식적인 해법이다.

우리 국회 문제의 본질은 제정된 국회선진화법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법의 취지대로 여야가 국회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후진적인 인식 태도와 관행이다. 법의 취지는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식 운영과 국회 운영을 볼모로 삼아 여당에 맞서는 야당의 벼랑끝 전술을 자제하고, 대화와 타협 및 협력을 통해 국회 운영의 책임 있는 파트너가 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는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대로 여야 간 대화와 타협에 의한 정치를 제대로 시도해 보지도 않고, 통과된 지 1년여 만에 법 개정 타령부터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태도다.

이번 원외투쟁에서 드러났듯이 법 제정 이후 고민은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더라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정착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국회가 ‘다수 여당의 횡포’ 또는 ‘소수 야당의 저지’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후 과제는 국회의 교착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을 관철하는 원외 지도부에 의하여 당론이 결정되지 않도록 원내정당화를 내실화해야 하며, 강제적 당론의 금지 및 의원들의 합의에 따르는 당론투표제의 도입 등으로 의원의 자율성을 실질화해야 한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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