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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손학규의 네 번째 선택 / 임석규

등록 2013-10-06 19:04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손학규는 재보선과 남다른 인연을 지닌 정치인이다. 굴곡진 정치 여정에서 재보선은 그에게 여러 차례 활로를 열어줬다. 정치입문도 1993년 광명 보궐선거(제14대) 승리를 통해서였다. 2009년 수원 장안 재선거에선 당의 삼고초려에 응하지 않은 대신 측근인 이찬열을 내세운 뒤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불리한 형세를 단박에 역전시키며 자신의 승리로 만들었다. 2011년엔 야당 불모지와 같던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한나라당 강재섭을 꺾고 여당 대표를 사퇴하게 하는 등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10·30 경기 화성갑에 나선다면 재보선과 관련된 네 번째 인연이 되는 셈인데,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다. 자칫하면 ‘재보선 구원 전문’이란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지역구를 또 옮기는 것에도 부담을 느낄 법하다. 대선을 도모하는 그에게 국회의원 금배지 한 번 더 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좀더 결정적 시기에 더욱 빛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출마를 만류하는 참모들도 많다. 화성갑은 최근 세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연거푸 패한 곳이다. 선거에서 지면 어쨌든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된다. 계파 이해가 엇갈려 분당을이나 수원 장안 재보선 때와 달리 당에서 일치된 목소리로 그의 출마를 요구하는 상황도 아니다. 화성갑 출마는 그에게 독배일 수 있다.

손학규는 과거 재보선 출마 여부를 결정하면서 독특한 선택을 했다. 쉽지 않은 곳으로 여겨지던 분당을엔 출마했고 낙승이 예견됐던 수원 장안엔 직접 출마하지 않고 측근을 내세웠다. 결과는 그와 당에 모두 좋았다. 유불리를 셈하지 않고 명분에 충실한 선택을 한 덕분이었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그가 무슨 논리를 들어 불출마를 결정하더라도 야권 지지층은 어려운 싸움에서 도피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이 화성갑에 대통령의 측근인 서청원을 막무가내로 공천하는 순간, 손학규가 나서면 뭔가 커다란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치가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한껏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보선은 어느 정도는 정권에 대한 단기 중간평가 성격을 띤다. 그래서 늘 여당은 판을 줄이려 하고 야당은 키우려 한다. 이번에 재보선 판을 키운 건 여당이다. 원칙을 허물면서까지 대통령 측근 공천을 밀어붙였다. 판이 어떻게 짜여도 무조건 여당이 승리한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있거나 야당을 우습게 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8개월 만에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느닷없이 선거 차출 압박을 받는 손학규로선 곤혹스러울 거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인물을 학수고대하는 야권 지지층의 열망을 마냥 외면하기도 괴로운 노릇이다. 출마하면 상황이 복잡하고, 출마하지 않으면 지지층에서 욕을 먹게 돼 있다. 결국, 선택은 그의 몫이다. 누구도 억지로 등을 떠밀 수는 없다. 다만 그가 독일에서 8개월 머무는 동안, 이 정권이 국내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그동안 시대가 얼마나 거꾸로 흘러갔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 채 출마를 고사하는 건 아닌지 그것을 염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손학규가 끝내 불출마하면 김한길, 정세균 등 민주당 계파 보스들은 더 큰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됐던 대통령의 측근을 여당 후보로 공천한 것은 원칙을 구부린 정도가 아니라 반칙에 가깝다. 그런데도 야당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작은 이해관계에 집착해 무기력하게 대응한다면 국민은 대통령과 여당이 민주당을 우습게 볼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테고, 지지층은 민주당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접을 것이다.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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