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작가 외에 표현에 가장 민감한 직업을 고르라면 정치인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어떤 뉘앙스나 느낌을 풍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곡해될 수도 있다. 물론 막말을 정체성으로 하는 얼치기 정치인도 없진 않지만 대개는 표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신중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 이유로 ‘양심’을 거론했다. 생소한 용례라 그 함의가 궁금하다.
주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책을 양심상 책임질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표면 메시지다. 그런데 그가 양심이란 단어를 선택한 데에는 숨은 메시지가 있어 보인다. 공약의 주체는 후보다. 65살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한 후보는 지금 대통령의 자리에 있다. 진 전 장관이 거론한 양심이 공약을 한 후보, 곧 박근혜 대통령의 양심을 넌지시 겨냥하는 건 아닐까. 과도한 추론일 수 있겠지만 사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사람은 공약의 주인인 박 대통령이라 그런지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의 사퇴에서 두 가지 팩트(사실)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지난 8월 말에 진 전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기초연금 방안이 청와대에 의해 뒤집혔다는 사실이다. 주무장관의 생각에 반한 결정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최소한의 행정관행이나 절차도 무시되고 힘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조폭행정이나 다름없다. 다른 하나는 장관의 대통령 면담 요청이 거부당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진 전 장관이 면담을 요청했으나 정작 대통령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비서들이 장막을 쳤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코미디다.
그런데 이 코미디는 웃지 못할 비극이다. 만약 왕실장이라고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숨은 실세라고 하는 안봉근 제2부속실장이 장관의 면담 요청을 묵살하고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건 월권이고 기망이다. 헌법에 그 역할이 보장된 국무위원이 대통령과 소통하는 데 애를 먹고,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소관하에 있는 정책에 대한 설명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면 심각한 국정난맥이다. 더 위험한 일은 이런 와중에 청와대 수석이 나서서 해당 부처 실·국을 움직여 장관 몰래 수정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수석은 보건복지부 관료 시절 새누리당의 기초연금 방안에 대놓고 반대했던 인물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진 전 장관으로선 굴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농단이다.
딱 부러지게 이건 대통령의 책임이다.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한테 ‘셀프 개혁’을 맡기고, 새누리당의 방안에 반대했던 인물에게 기초연금 방안을 짜게 만드는데, 누가 민심을 말하고 누가 상식을 논하겠는가. 뿐인가. 대통령은 떠나는 진 전 장관의 뒤통수에다 대고 독설을 퍼부었다. “국무위원이 비판을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발언을 공격명령으로 인식한 ‘천똘’(천박한 똘마니)들이 일제히 나서서 진 전 장관을 배신자로 규정했다. 누군가는 진 전 장관이 3년마다 박 대통령을 배신한다는 3년 주기 배신설을 제기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먼저 도망가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누가 여러 차례 중용했나. 결국 이런 비판은 대통령을 돕는 게 아니라 되레 욕보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거 박정희 정권의 숱한 위기는 측근들의 배신 때문에 초래됐다. 배신은 권위적 통치의 필연적 부작용이다. 박 대통령이 잊지 않아야 할 역사의 일침이다. 무릇 강하면 부러지고, 누르면 덧나기 마련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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