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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중국 대륙과 대만의 ‘지경학적’ 접근 / 진징이

등록 2013-10-06 19:12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대만 진먼다오(금문도)의 산에는 ‘삼민주의 통일중국’이라는 구호가 씌어 있다. 국민당 식의 대륙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구호가 바라보이는 바다에 유람선이 떠 있다. 대만 관광을 즐기고 있는 대륙 관광객들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진먼다오는 중국 대륙에 맞선 대만의 전초기지였다. 1958년 8월23일부터 대륙에서는 진먼다오를 향해 포사격을 시작했는데 하루 동안 459대의 포에서 무려 3만발이나 되는 포탄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상호 포격이 20년간 지속됐다. 포격이 멎은 것은 1979년 1월1일,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앞서 1949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진먼다오 해방을 위해 병력 9000명을 진먼다오 전역에 투입했다가 전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창군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인 완벽한 참패였다. 진먼다오 구닝터우 전역(전쟁역사) 기념관에는 이 역사가 전시돼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대륙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이 대륙과 대만의 ‘하늘에 치솟는 원한’을 사그라지게 했을가? 바로 ‘선경후정’(先經後政)’의 ‘지경학적’ 접근이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90년 가까이 응어리를 쌓아왔다. 대만은 중국의 핵심이익이자 통일 대상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에 미국이 대만과 공동방위조약을 맺으면서 그 지정학적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냉전이 종식된 뒤에도 양안은 지정학적 갈등과 충돌을 멈추지 않았다.

1995~1996년 일어난 대륙과 대만 사이의 위기에서 중국 대륙은 대만 해협을 미사일로 봉쇄하였다. 지정학적 접근의 극치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전쟁 일보 직전까지 연출되면서 대륙과 대만 관계는 빙점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대만 민심이 대만 독립을 고취하는 리덩후이를 총통으로 만드는 역효과가 일어났다. 지정학적 접근으로는 대만의 민심을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사실 중국 대륙과 대만은 남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던 해에 그에 맞먹는 ‘92공식’이라는 합의를 도출해냈다. 거기에는 정치적 함의보다 경제적인 내용이 더 많이 포함돼 있었다. 이 ‘92공식’은 수차례의 위기를 거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됐고, 결국 오늘에 이르기까지 양안 관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10여년간의 경제 침체를 겪은 대만은 부상하는 중국 대륙과의 지경학적 접근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양안 모두 경제를 우선순위에 놓았기에 지정학적 접근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흔히 21세기가 20세기와 다른 중요한 요소로 ‘지경학’의 부상을 꼽는다. 경제 글로벌화의 물결 속에서 지경학적 패러다임의 핵심인 연합과 협력은 냉전과 대결을 주 내용으로 하는 지정학적 패러다임을 대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륙과 대만은 이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고 대교류와 대협력, 대발전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대만은 정치 관계와 군사 동맹을 우선으로 하던 기존 패턴을 넘어 양안 자유무역지대 구축과 같은 논의도 시작하고 있다. 대륙과 대만, 그리고 홍콩과 마카오까지 경제 블록을 이루면 유럽이나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에 뒤지지 않는 경제연합체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륙과 대만 사이에는 통일과 관련한 논의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긴 양안 사이에 매주 항공편만 560편이 오가고 통신, 인적 왕래가 다 이뤄지고 있으니 통일이 따로 없다는 이야기도 나올 만할 것이다.

중국 대륙과 대만의 경험이 남북한에 타산지석이 될 수 없을까?

북한은 올해 5월29일 경제개발구법을 반포하고 북한 각 도에 여러 특색 있는 경제개발구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투자유치에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투자유치 대상은 모두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북한은 시장경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북한은 경제관리를 개선하면서 이미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경학적’ 접근이 가능한 요소이다. 마르크스 이론에도 경제 기초가 상층을 바꾼다고 했다. 이젠 지난 패턴을 번복하지 말고 ‘지경학적 접근’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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