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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여의도 면적’을 누가 알까 / 권혁철

등록 2013-10-08 19:10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30대 그룹이 가진 땅, 여의도 면적 60배’, ‘여의도 면적 4.3배 군사보호구역 해제’, ‘지난해 우리 국토 여의도 면적 14배 늘었다’, ‘서울시내 온실가스 줄여 여의도 면적 110배 숲 조성효과’, ‘미국 산불 비상, 여의도 면적 60배 불에 타’, ‘무등산 주상절리대 11㎢에 형성, 여의도보다 넓어’….

면적을 ‘여의도’에 견줘 최근 보도된 기사들이다. 왜 기사에 ‘여의도 면적의 몇배’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걸까. 주변의 선후배 기자들에게 물어봤다. 면적을 설명하는 기사에서 딱딱한 수치만 나열하면 독자들이 얼마나 넓은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여의도’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들어 비교한다는 설명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비교 대상이 여의도일까. 선후배 기자들은 여의도가 섬이라 면적을 뽑아 다른 지역과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데다 은행, 증권사, 언론사, 국회의사당 등이 있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이나 행정기관이 언제부터 여의도를 면적 비교의 기준으로 썼을까.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물어봤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시에 오래 근무한 공무원들은 1980년대에도 ‘여의도 면적’을 사용한 것으로 기억했다. 기사를 검색해봤더니 87년 무렵부터 면적을 ‘여의도 몇배’에 비교한 기사가 나왔다. 이로 미뤄 볼 때, 대략 80년대 중후반부터 여의도가 면적 비교 기준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면적 비교 기준으로 ‘여의도’를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의도 면적 자체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실제 쓰이는 여의도 면적은 세가지나 된다. 먼저 행정구역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8.4㎢다. 여기에는 여의도 섬 전체와 주변 강바닥, 밤섬 일부가 들어간다. 하지만 한강 바닥까지 여의도로 보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둘째는 한강시민공원 등 둔치를 넣은 여의도 섬 전체 면적 4.5㎢이다. 하지만 비가 오면 잠기는 둔치는 강바닥과 다를 바 없어 섬 면적에서 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셋째는 하천이나 둔치를 뺀 여의도 윤중로 제방 안쪽 2.9㎢이다. 70년대 초반 여의도 개발을 하면서 제방을 쌓았을 당시 면적이 2.9㎢였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 모습의 여의도가 들어섰다.

여의도 면적을 두고 혼란이 생기자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여의도 면적’이라고 할 때는 2.9㎢를 기준으로 한다”고 교통정리를 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의도 면적을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의도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여의도 면적을 정확히 아는 서울 사람은 드물다. 나도 서울에 25년 넘게 생활하고 있지만 여의도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어림짐작하기 어렵다. 더구나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의도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렵다. 기자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의도 면적’에 비교해 기사를 친절하게 쓴다고 하지만, 정작 독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일부 누리꾼들은 ‘여의도 면적’이 언급된 기사에 댓글을 달아 ‘가늠하기 어려운 여의도 면적이 아니라 알기 쉬운 축구장을 면적 비교 기준으로 삼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축구장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길이 105m, 폭 68m, 면적 7140㎡)을 비교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의도를 다른 곳의 면적과 비교하는 객관적 잣대로 쓰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습관처럼 ‘여의도 면적’을 사용하는 것은 ‘서울 중심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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