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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노벨문학상 / 최재봉

등록 2013-10-15 19:23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노벨상에 문학상이 포함된 것은 이채롭다.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같은 과학 분야는 물론 경제학과 평화 쪽에서도 수상자의 업적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반면, 문학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용성과 무관한 미적 가치를 노벨상에 담고자 했더라도 그것이 하필 문학상이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가령 노벨미술상이나 노벨음악상이었다면 어땠을까. 미술과 음악이 문학과 가장 큰 차이는 언어라는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분야의 감식안을 어느 정도 지닌 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미술 작품이나 음악이라도 자유롭고 충실하게 향유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언어를 질료로 해서 창조되는 문학 작품을 즐기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를 해독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어떤 한 사람이 수백 개가 넘는 전세계의 언어에 두루 통달해서 각 언어로 쓰인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다.

‘투기꾼을 위한 경제학’이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하고 노벨평화상이 전쟁범죄자에게 돌아가는 일도 있지만, 문학상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노벨상 분야는 달리 없을 것이다. 노벨의 모국인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출신 수상자 수십명 가운데 지금 세계의 문학 독자들이 기억하는 이름은 한손으로 꼽을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레프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같은 유수의 작가들이 노벨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번역의 기회를 얻지 못해 노벨상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소수 언어 사용 작가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노벨문학상은 말하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와 같다. 유럽어를 중심으로 한 주요 언어 사용 작가들에게 유리한 경기라는 뜻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체로 뛰어난 작가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뛰어난 작가라고 해서 모두가 노벨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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