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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피흘리지 않고 어떻게 수술하나?

등록 2005-08-30 19:07수정 2005-08-30 19:07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살점은 베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빚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의 살점 1파운드를 베어가겠다는 샤일록의 요구에 포샤가 내린 판결이다.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종합대책 마련 과정을 보면서 그 장면이 몇 번이나 떠올랐다. 선의의 피해자가 없게 하고 투기꾼만 잡겠다, 경기에 악영향이 없게 투기만 잡겠다는 발상이 마치 포샤의 요구처럼 들렸던 것이다.

투기로 인한 거품이 언제 꺼질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투기는 군중의 광기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근대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도 1720년 영국에서 일어난 남해회사 주식투기에 가담한 적이 있다. 처음엔 그도 100%의 수익률을 올렸다. 그러나 주식을 팔았는데도 주가가 더 오르자 참지 못하고 다시 주식을 샀다. 결국 첫 거래에서 번 돈의 세 배를 잃었다. 뉴턴 또한 광기에 휩싸인 군중의 일원일 뿐이었다.

뉴턴의 경험을 잘 아는 이들은 그래서 투기의 끝을 함부로 예고하지 않는다. 지난주말 “미국 부동산 거품이 내년쯤 꺼지면서 세계경제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폴 크루그먼도 거품이 3년 안에 꺼지지 않으면 놀라운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측이 빗나갔을 때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둔 것이다.

역사적으로 단번에 투기꾼들을 때려잡겠다고 시도한 대책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란 어렵다. 최선의 대응은 투기가 번지는 조건을 없애가며 군중의 광기가 두려움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것이다. 정부가 오늘 발표하는 대책도 유동성 과잉이 여전한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보유세와 양도세를 강화해, 부동산 투자의 수익률 자체를 낮춘 것은 뿌리에 다가서 있다.

정부는 이번에 종합 부동산세 과세 대상을 기준시가 6억원 이상 주택으로 넓힌다. 그 효과는 얼마나 될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값을 계산하는 식으로 따져볼 수 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일년에 하나씩 50만원짜리 알을 낳는 거위의 값은 시장 이자율이 5%일 때 1천만원이다. 앞으로 낳을 알값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서 모두 더하려면 알값(50만원)에 이자율의 역수(1/0.05=20)를 곱하면 된다. 보유세 강화도 늘어나는 세금액에 20배를 곱한 만큼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지는 집은 일부에 불과하다. 기준시가 6억원 이하의 집을 한 채만 갖고 있으면 보유세 부담이 전혀 늘지 않는다. 양도세 중과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정부 대책은 다주택 보유자들이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집을 팔고, 그것이 공급확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대책이고,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다.

정부는 재산세의 실효세율을 1%로 높이는 시기를 애초 계획보다도 2년 늦춰 2019년까지로 잡았다. 중산층과 서민의 세부담이 커진다는 공격을 견뎌내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기준시가 6억원 미만의 집은 투기 대상이 되어도 좋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주택에 대해 보유과세를 신속히 현실화하자고 요구해야 옳다. 세부담이 커진다고? 당연하다. 하지만 소득세를 그만큼 공제해주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건설경기가 나빠져 전체 경기가 나빠진다고? 거품 제거 없이 어떻게 경제가 정상으로 굴러가길 바랄 것인가. 설문조사에 나타난 여론은 정부가 부동산 투기라는 암세포를 과감히 베어버리기를 바라고 있다. 비록 피를 흘리더라도 말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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