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아시아문화경제연구원장
정부의 창조경제 개념은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을 산업 전반에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중요한 화두이다.
그런데 창조경제를 두고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창조경제를 말하면서도 창조성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는 문화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은 중대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창조경제 속에 창조의 바탕을 이루는 예술이 빠져 있는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인공위성으로 찍은 지구의 사진을 2007년부터 공개한 바 있다. 나사는 매우 창조적인 형태의 이 지구 사진들을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인간의 창의적 상상력에 많은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것은 나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사회 속에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 20개 국가가 참여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엘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와 프랑스 퐁피두의 이르캄(IRCAM)과 공동으로 아트 레지던시 프로젝트 아츠 선(Arts@CERN)을 진행하고 있다. 아츠 선의 롤프디터 호이어 사무총장은 아츠 선 설립 당시 “예술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위한 것이며, 예술과 과학은 서로를 보완하고 대변해왔다. 우리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힉스 입자의 발견보다 어려운 증명을 시도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성”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들은 과학 분야에서 각자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기관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과학의 극점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며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창조성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르스 엘렉트로니카와 이르캄 역시 창조산업의 국제적 대명사와 같은 연구기관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창조경제’를 매일 외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의 창조경제에는 희한하게도 문화·예술에 대한 고려가 없다. 창조경제 어디를 봐도 과학과 기술, 지식 등에 대한 융합은 언급되어 있으나 문화·예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큰 난센스가 어디에 있는가. 영국의 ‘창의산업’(Creative Industry)은 예술·디자인·영상 등 문자 그대로 예술산업이라 할 정도로 예술에 깊게 간여하고 있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과학·예술·인문학 등의 융합을 통해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공간인 ‘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광역시에 건립되고 있다. 그곳은 5·18의 마지막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자리이고, 민주·인권·평화의 정신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아시아문화전당의 건립 이념이나 목표는 창조경제와 너무도 많이 닮았다. 창조경제가 내세우는 ‘창조적 동력’ ‘융합지식’ 등의 말들은 아시아문화전당 사업 계획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는 정부는 왜 이 사업에 무관심한가.
지금 정부는 2015년에 개관할 아시아문화전당의 운영 주체를 정부가 아닌 법인으로 한다는 법안을 이번 국회에 제출하였다.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한 많은 문화시설의 운영 방식을 전당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설들에서는 주로 공연·전시회 등 문화·예술의 향유를 위해 대관이나 기획 이벤트 등이 이루어진다. 아시아문화전당과는 그 취지와 출발이 전혀 다르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창조성을 바탕으로 경제·사회적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찾고자 하는 국가의 미래 비전을 담은 사업이다. 국가적 비전을 갖고 시작한 사업은 초기에 그만큼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율 구조를 갖추게 되면 많은 부가적인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애초 계획대로 국가기관으로 운영하고 향후 안정화 시기에 활동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충분히 보완되도록 법인화해 나가야 한다. 운영 주체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이병훈 아시아문화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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