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정홍원 국무총리가 그제 담화에서 “어렵게 살아나고 있는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려서 회복 흐름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최대한 집중하자”고 했다. 정 총리는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국가정보원 댓글과 엔엘엘 관련 의혹 등으로 혼란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분기 성장률 그래프가 1%대를 턱걸이하면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숨죽이고 경제를 살리자는 ‘불씨론’을 설파하고 있다. 자칫하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 경제는 지금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당시처럼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위기 상황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가 그것을 말한다. 국제통화기금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시기를 2011년에 2016년으로 봤다가 올해 2017년으로 한 해 늦췄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예측했다. 위기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2016년이 됐건 그 이듬해가 됐건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면 우리의 삶은 나아질까 하는 것이다.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으니 평균적인 3인 가족이면 연 6000만원 이상, 월 500만원 이상을 버는 셈이다. 파이를 잘 나누면 경제적 약자도 충분히 자존심을 지키며 살 만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한 해 문 닫는 자영업자만 80만명이 넘고 파산 직전의 가계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을 위한 경제살리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총리가 내세우는 경제살리기라는 것도 규제를 완화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거나 관광을 진흥시키면 일자리가 꽤 늘어난다는 정도다. 경제 활성화 법안만 통과되면 경제가 벌떡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중병에 걸릴 것처럼 얘기하지만 우리 경제 규모로 보면 미미한 변수다. 외자를 유치해 화학공장을 세우면 1만개 넘는 일자리가 생긴다며 안타까워하는데, 공장 짓는 데 동원되는 일용직까지 포함된 숫자로 실제 자동화된 공장 가동에 필요한 인력은 수십명이면 족하다고 한다. 눈 딱 감고 뻥튀기까지 하면서 경제살리기의 주술을 외는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공정한 경쟁은커녕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게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다. 경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런 환경에서는 양극화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재벌 총수의 반칙과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몇 개의 법안이 마련됐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기 어려운 지경이다.
기업과 시장의 현실은 판도라의 상자 열리듯 더 많은 경제민주화의 지속적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잇따라 터진 동양그룹과 효성그룹 사태는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비롯해 재벌의 고질병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아모레퍼시픽, 엘지유플러스 등 대기업에서 보란듯이 제2의 남양유업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협력업체를 종 부리듯 하며 금품 뜯기를 일삼았다.
위기의 본질은 공정한 시장의 룰이 사라진 데 있다. 이런데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중소기업, 소상공인,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경제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은 쑥 들어갔다. 경제민주화는 할 만큼 했다며 손을 털고 경제 활성화의 깃발을 드는 것은, 개복을 해보니 수술해야 할 곳이 여기저긴데 한두 군데 시늉만 내고 그냥 덮겠다고 하는 격이다.
경제를 위한 정치는 예측 가능하고 공정해야 한다. 공약을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고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세력을 비호하는 정부라면 경제에 골칫거리다. 경제위기라는 늑대는 없고 무능하거나 나쁜 정부와 정치가 있을 뿐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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