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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염지

등록 2013-11-03 19:16

집게손가락,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염전에 만든 못, 염분이 스며 있는 땅, 불경을 달리 이르는 말, 여러 가지 색깔을 물들인 종이, 손가락을 솥 속에 넣어 국물의 맛을 본다는 뜻으로 남의 물건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짐을 이르는 말, 번뇌를 태워 없애 지혜가 더욱 성하는 단계인 십지의 넷째 단계, 겉면이 매끈매끈하며 윤이 나는 내수성 종이, 자세히 잘 앎, ‘부추’의 함경도 방언. 이렇듯 여러 뜻으로 쓰이는 이것은 ‘부추’의 뜻일 때만 토박이말이고 나머지는 소금(鹽), 염색(染), 곱다(艶), 생각(念) 따위의 한자가 붙은 낱말 ‘염지’다.(표준국어대사전) ‘염지’의 뜻풀이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김치무리 담그기’를 이것이라 했고(동국이상국집), ‘봉선화로 손톱 물들이는 풍속’의 한자어를 ‘염지’라 하기도 한다.(한국세시풍속사전) 그런가 하면, 원뜻은 ‘소금절이’이지만 ‘훈제품 따위를 가공할 때 향신료, 조미료 등을 첨가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일본어 ‘시오즈케’(塩漬(け)·염지)에서 온 것이다.

40~50대 주부 중에 이 뜻의 ‘염지’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인터넷에서 ‘염지’를 검색해보니 ‘염지 닭’, ‘치킨 염지’, ‘닭가슴살 염지’가 연관검색어로 제시된다. 최근 누리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비어치킨+염지’는 8만건이 넘는다.(구글) ‘비어치킨’은 맥주 캔이나 맥주가 담긴 전용 조리 용기를 닭 뱃속에 찔러 넣고 구워 만드는 음식이다. 증발한 맥주가 닭고기에 배게 하기 위해서다. ‘염지’는 팍팍한 고깃살을 부드럽게,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캔 맥주를 이용한 ‘비어치킨’에서 인체 유해 물질 검출”을 다룬 기사를 접한 뒤 알게 된 ‘염지’. 언중에게 낯선 용어인 이 말 대신 쓸 표현을 찾아보니 그럴듯한 게 있었다. ‘밑간’(음식을 만들기 전에 재료에 미리 해 놓는 간)이나 ‘재다’(음식을 양념 따위로 맛이 들도록 무치거나 발라 두다) 등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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