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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한일관계 2.0 / 박병수

등록 2013-11-10 19:05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행사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생뚱맞게도 개인 청구권이 떠올랐다.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청구권도 “존재하지만 행사할 수 없다”는 게 일본의 애초 논리였기 때문이다. 행사도 못하는 권리라니, 그런 권리도 다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기억이 새롭다.

집단 자위권은 헌법 재해석을 통해 ‘진짜’ 권리로 거듭나려 하고 있지만, 개인 청구권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일본의 입장은 “외교 보호권만 소멸했고 개인 청구권은 존재한다”(1991년 8월 야나이 슌지 외무성 조약국장의 참의원 답변)에서 “일본이 응할 법적 의무가 없다”(2003년 9월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 준비서면)로 바뀌었고, 이젠 “65년 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못박고 있다. 두 권리의 엇갈린 운명이 얄궂다.

한-일 관계가 어렵다고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아직 정상회담도 못하고 있다.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떻게’에 이르면 그리 녹록지 않다. 두 정상이 어떻든 만나기만 하면 문제가 풀릴까. 그러기에는 과거사의 심연이 너무 깊어 보인다.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가장 큰 변곡점을 맞은 것 같다. 무엇보다 최근 일들은 그동안 한-일 관계의 근간이 돼온 협정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한일협정 당시 청구권협정에 대해 “양국간 재정·민사 관계 청산을 위한 것이지 식민지배 피해 배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고, 이후 곳곳에서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잇따랐다. 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이 해결됐다는 40여년의 논리가 한국에서 하루아침에 설 땅을 잃었다.

잠시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어떻게 될까? 일본이 순순히 따를 리 만무하니, 한국은 강제집행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가만 있을까. 그러면 한-일 간 정면충돌이 어디로 튈까. 우려된다.

법원의 판단은 그동안 청구권 문제를 억눌러온 1965년 협정 체제의 파탄 선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2005년 정부의 ‘한일수교 문서공개 대책 민관공동위원회’가 “위안부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 등 세 가지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밝히면서, 한일협정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했다. 냉전 시절 미국과 한국, 일본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과거사를 봉합했던 1965년 협정이 어떻게 21세기 한-일 관계를 담아낼 수 있겠는가. 과거사를 정치적 이해타산과 밀실 흥정, 야합이 아닌 배려와 이해, 공감의 확대로 녹여낼 새 틀이 필요하다.

쉬운 일도 아니고 긴 호흡이 요구되는 일이다. 더욱이 상대가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앞서 우리부터 반성할 대목이 있다. 정부는 1965년 일본에서 식민지배 피해자 등의 몫으로 3억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10년 뒤 피해자들에게 돌려준 것은 91억원뿐이다. 일본에서 받은 3억달러가 1975년 환율로 1452억원이었으니, 정부가 피해자의 돈을 대부분 가로챈 셈이다.

정부는 2005년 2월부터 피해자 신고를 받아 추가 보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0만명이 넘는 강제징용자의 1%도 안 되는 6만6985명이 5400억원을 받았을 뿐이다.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재단’이 피해자 25.7%에게 보상했다고 하니, 격차가 너무 크다. 직접 서류를 뒤져 피해자를 찾아낸 독일과 신고만 기다린 우리의 차이다.

벌써 해방 이후 두 세대가 지나 많은 피해자가 세상을 등졌다. 신고만으론 한계가 있다. 그나마 신고 기한이 2008년 6월로 만료됐으니, 이젠 신고도 할 수 없다. 일본이 배상 요구에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면 뭐라 대꾸할 것인가?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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