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하 사회2부 호남제주팀장
한달 전 젊은 민속학 연구자에게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채정례 선생의 부고였다. 고인은 전남 진도에 살면서 60년 이상 굿판에 섰던 당골이었다. 한평생 망자를 위한 굿판에 섰던 명무의 넋을 천도하는 굿 의례의는 누가 맡았을까. 궁금했다. 이튿날 소리꾼 채수정(43) 등 고인의 제자 3명이 스승을 위한 굿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채수정에게 전화를 걸어 스승을 위한 굿을 올리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었다. 채수정은 “굿을 하기 전 (선생님의 딸들에게) ‘언니들이 배워야 하는데…’라고 말했더니 웃더라”고 했다. 전라·충청도와 동해안권 등지는 굿을 대물림하는 세무권역이다. 신내림을 한 강신무가 굿판에 서는 서울과 황해도 등지와 다르다. 무업을 천시하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세습무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채수정은 “선생님이 지키려고 했던 굿(의 원형)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채수정은 음악학 박사 출신의 소리꾼이다. 그는 2011년 광주광역시 임방울국악제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실력파다.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하던 채수정은 예술고등학교 시절 민요 <농부가> 소리에 반해 국악으로 돌렸다. 처음엔 작품으로 굿을 접하다가 굿을 직접 배우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이 굿을 채록하는 것은 전통문화가 죽어서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연행물은 연행으로 남아야 살아 있는 예술이 된다.” 채수정의 소신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채수정은 1999년부터 진도에 틈틈이 내려가 굿을 배워 스승과 함께 굿판에 섰다.
굿은 우리 전통음악의 못자리다. 굿을 집안 대대로 해온 집안에선 명창과 명연주자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굿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나이 든 노무들이 세상을 뜨면서 굿이 계승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아파트 주거문화 등으로 굿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굿을 미신이라고 터부시했던 편견도 굿의 쇠퇴에 한몫했다. 굿은 이제 도시 인근의 ‘굿당’으로 밀려났다. 광주광역시 외곽에도 5~6개의 굿당이 있다. 도심 밖 굿당에선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현세의 복을 비는 굿판이 열리고 있다.
굿을 활성화할 방법은 없을까? 전라도 굿은 음악이 발달하고 춤이 아름다워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굿을 볼 때마다 한국인에겐 굿을 좋아할 디엔에이가 내재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쟁과 소리에 섞인 당골의 사설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늘만 있는 게 아니다. 굿엔 연극적 요소가 가미돼 재미가 있다. 판을 만들어 툭 건드려주기만 하면 굿을 좋아할 수 있다. 몇년 전 세습무 부부와 함께 광주 대인시장 한 공간에서 굿판을 벌이면서 그 가능성을 경험했다.
도시에서 굿을 활성화하는 것은 자치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무등산 자락 전통문화관에서 한달에 한번 정도 굿 공연을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산 사람의 복을 비는 재수굿이나 망자를 위한 씻김 대목만 골라 판을 벌이는 방식으로 변용하면 된다. 굿을 꼭 종교적 의례로 보지 말고 수천년 이 땅의 민중들이 지켜온 삶의 양식으로 이해하면 종교적 반발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큰굿을 벌이면 시민들을 위한 치유의 장이 될 수 있다. 굿판을 열고 굿 명인들을 존중해야 누군가 굿을 이어가지 않겠는가.
굿을 살리는 것은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지역에서 아시아와 세계의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지역문화를 홀대하는 태도는 자기부정이다. 굿판을 꾸준히 여는 것은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진도의 토요상설공연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굿과 판소리 등 문화 원형을 현대적 장르와 결합하는 창조성이 지역문화 활성화의 핵심이다.
정대하 사회2부 호남제주팀장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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