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1. “내가 하나 가져도 될까?”(Can I have one?)
짐을 검색하던 공항 직원이 한국으로 가져갈 기념품 포장을 뜯더니 물었다. 보름 전 다녀온 아프리카 출장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노골적인 ‘삥뜯기’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디스 이즈 어 프레즌트 포 마이 프렌드”(This is a present for my friend)라고 우물거렸다. 가방을 뒤적이는 그의 세심한 손길은 스마트폰에 이르렀다. “이거 신형이야?” 눈빛이 반짝였다. 진땀이 흘렀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애써 웃으며 ‘플리즈’(Please)를 연발해서 그랬는지, 그는 한참 동안 가방을 수색한 뒤 가도 좋다고 했다. 곁에선 또다른 직원이 영어를 전혀 못하는 중국인 모녀에게 “영어도 못하면서 왜 우리나라에 왔냐”고 호통치고 있었다. 그는 기어이 모녀가 밥솥 보따리 안에 쟁여뒀던 과자 보따리를 적발해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초등학생 조카는 물론 주변 성인 남녀들로부터도 “사자 보고 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사자만큼이나 무서웠던 가나 아크라 공항의 직원 얘기를 해줬다. ‘보안’ 때문이라면서도 검색기계도 작동시켜놓지 않은 채 환승객들의 짐을 샅샅이 뒤지던 모습. 승객들에게서 뭔가를 뜯어낸 대가로, 윗사람에겐 또 무엇을 얼마나 상납해야 했을까. 비록 작은 단면이긴 하나, 가난에 찌든 부패의 땟자국을 목도하니 씁쓸했다. 과거 식민 모국들이 귀한 천연자원을 헐값에 쏙쏙 빼먹으며 경제적 지배를 영속화할 수 있는 건 이곳에 만연한 부패 때문 아닌가.
#2. “영어가 우리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세이푸 아세지드(43)는 영어를 잘했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활동가여서도 그렇지만, 에티오피아에선 고등학교 이상 교육과정은 모두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도 아니었는데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영어 수준이 높다고 하자, 그는 ‘영어 몰입 교육’의 폐해를 제기했다. 교육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창의성과 혁신인데, 남의 나라 말로 배우면 핵심을 깊이 이해할 수 없고, 개념어를 에티오피아어로 옮기기 어려워 학문이 발전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1970년에 태어난 그는 일곱살 때 아버지가 에티오피아-소말리아전에서 전사한 뒤 쿠바의 고아원에서 6년을 지냈다. 냉전 당시 사회주의 동맹국이었던 쿠바가 에티오피아의 가난한 아이들을 불러 먹이고 입혔던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탓에 세이푸는 스페인어와 영어에 두루 능통하고, 국제적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
세이푸는 유럽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들이 아프리카의 활동가들은 늘 ‘주변인’ 취급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프리카 활동가들도 본부로 불러 세계 어디든 긴급구호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지만, 정작 아프리카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비자도 없는 유럽 활동가들을 굳이 장거리 비행기를 태워 보내 업무를 맡긴다는 거다. “나도 <알자지라> 방송에 나와 시리아 난민들의 상황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눈빛이 사자처럼 이글거렸다. 세이푸는 얼마 전 유럽 본부로부터 워크숍 참가 제의를 받았다. “안 간다고 했다. 비행기 타고, 좋은 호텔에 묵는 거? 나 그거 이제 충분하다.”
#3. 아프리카에서 열흘 남짓 머물면서 이처럼 대조적인 두 모습을 만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두 장면 모두 아프리카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건 한국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했다. 식민의 고통, 참담한 내전의 경험과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분열,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부정부패의 사슬과 불평등. 그러면서도 우리는 꾸준히 전진해왔다…. 세이푸를 응원하고 싶다. 아프리카가 ‘백색 대륙’으로부터 원조받는 처지를 벗어나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기를. 아프리카가 ‘다른 꿈’을 꾸길. 나도 우리만의 ‘다른 꿈’을 품어본다.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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