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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올가을 첫눈

등록 2013-11-24 19:16

개미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듯 정적이 깔린 교실에 모깃소리 같은 탄성이 흘렀다. 시험지 뚫어지게 봐도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을 누군가의 것이었을 것이다. ‘눈이다!’ 감독 교사는 무심히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지만 십대 끄트머리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진짜…’, ‘아…’,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여기저기서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에 내 것도 섞여 있었다. ‘하필이면’ 대입 시험 치르는 날에 첫눈이 내린 것이다. 시커먼 남학생들이 그러했으니 같은 시각 창밖의 첫눈을 바라본 여학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래전 어느 해 11월24일, 대입 수험생으로 맞은 첫눈의 정경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지난 월요일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그날’ 날리던 눈발과 달리 왕소금처럼 ‘멋대가리 없는’ 눈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하늘은 파랗게 터져 있는데 머리 위 하늘에서는 눈 내리니 ‘여우비’(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첫눈은 첫눈이다. ‘첫 눈’이 아니라 첫눈. 그것도 ‘올 가을’ 아닌 올가을에 내린 첫눈이다. ‘올해의 준말’인 ‘올’이 붙은 ‘올가을’, ‘맨 처음의’ 뜻인 ‘첫’이 붙은 ‘첫눈’은 합성어로 붙여 쓴다.

띄어쓰기 한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대수일까. 그렇다, 소릿값이 달라진다. 두 낱말의 발음은 [올가을]과 [천눈:]이 아닌 [올까을]과 [천눈]이다. ‘올봄’, ‘올여름’, ‘올겨울’의 소릿값은 [올뽐], [올려름], [올껴울]이다. ‘봄눈’, ‘함박눈’, ‘싸락눈’, ‘소나기눈’(폭설), ‘숫눈’(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의 ‘-눈’은 장음 [눈:]이 아닌 단음으로 발음한다. ‘눈’(雪)의 본래 소릿값은 장음이지만 ‘단어의 첫음절에서만 긴소리가 나타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표준발음법 제6항) ‘첫눈’의 ‘눈’이 첫음절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짧게 [천눈]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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