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안철수 다당제론의 오류 / 임석규

등록 2013-12-01 19:06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안철수가 창당준비위가 아니라 새정치추진위라는 임의기구를 띄운 건 창당 작업이 순탄치 않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안철수는 신당과 관련해 ‘우생마사’(牛生馬死)란 사자성어를 자주 인용하는데, 홍수 때 말은 발버둥치며 물길을 거슬러 헤엄치다 힘이 빠져 죽지만 소는 물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다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일이 꼬이더라도 무리해서 억지로 풀지 않는다는 얘기이니, 지방선거에 맞추려고 창당을 서두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당이 늦어진다고 국민 살림살이가 나빠질 것도 아니므로 속도에서는 안철수가 맞다.

문제는 좌표와 깃발이다. 안철수 신당의 깃발이 민주당과 새누리당 중간지대에서 흐릿한 회색 빛깔로 나부낄 가능성을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안철수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다. ‘중간지대 제3정당’이란 좌표를 수정하지 않는 한 좌우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과 새누리당 양쪽의 땅을 빼앗아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계산하겠지만 외려 양쪽의 협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쉽다.

잘못된 좌표 설정은 다당제 옹호론으로 이어진다. 안철수는 “양당제 구조는 양극단에 있는 목소리 큰 사람 쪽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 정치의 본래 역할을 본다면,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최근 말했다. 그러니까 양쪽 세력의 중간에서 중도적 목소리를 내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거 아닌가. 이렇게 가면 이도저도 아닌 틈새정당,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보따리당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그는 ‘한국 정치의 재편을 위한 새 정치의 틀’을 목표로 제시했다. 방향은 옳다. 하지만 그 귀결점이 다당제라면 결과적으로 현 집권세력의 독점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명분이야 좋지만 다당제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1여다야’의 야권 분열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여야의 진영 대립 구도와 진보, 보수의 정책·이념 대립 구도를 혼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은 근거나 타당성을 따지지 않은 채 무조건 자기편은 감싸고 상대편은 배척하는 정치의 편협함을 혐오한다. 국민이 안철수에게서 기대하는 건 여야의 극단적 대결 구조와 비이성적 진영 이기주의를 넘어서라는 거다. 이는 정치의 행태, 태도, 스타일과 관련된 것이며,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중간지대에 진을 치는 것과는 무관하다.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의 왼쪽에 터를 잡을 때 길이 열릴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최근 여론조사를 봐도 안철수 신당 지지층은 진보 42%, 중도 18%, 보수 16%였다. 이런 좌표 설정은 제3당이 아닌 제2당 전략, 그러니까 제1야당 전략을 전제로 한다. 안철수 신당이 제1야당의 위상을 놓고 민주당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을 눌러 제압하거나 민주당에 패해 흡수되거나 민주당과 합쳐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하는 가운데 한국 정치는 새롭게 재편될 수 있다. 제3당과 다당제로 가면 공멸한다는 걸 문국현의 창조한국당과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이 보여준 바 있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비새누리당 영역’에서 새로운 수권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열망과 기대가 투영된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창당 무렵 받았던 기대와 맥이 같다. 태어나기도 전에 제1야당의 지지율을 1년 가까이 더블스코어로 제치고 있는 걸 보면 야권 지지층은 안철수에게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을 온전히 제압해 제1야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는 거다. 물론, 진보·개혁세력의 새로운 대안정당, ‘반박근혜 세력’의 중심축으로서 담대한 깃발을 높이 세울 때에만 가능한 얘기다.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