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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소설·대설 / 김지석

등록 2013-12-01 19:10

몽골 병사를 피해 강화로 가는 고려 왕 일행을 손돌이라는 사공이 배에 태우게 됐다. 배가 광성 부근에 이르자 바닷물이 소용돌이를 치기 시작했다. 왕은 사공이 일부러 그랬다고 오해하고 그의 목을 베었다. 사공의 주검은 물가에 매장됐는데, 이곳의 이름이 손돌목이다. 이후 사공이 숨진 음력 10월20일 전후가 되면 찬 바람이 세게 불고 물결이 크게 일었다. 이 바람이 ‘손돌풍’, 이 무렵의 추위가 ‘손돌이추위’다. 사람들은 손돌의 원한이 맺혀 그렇다고 생각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영조 때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만든 <여지도서> 강화부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음력 10월20일은 소설(小雪) 즈음이다. 올해는 날짜가 정확하게 일치한다(11월22일). 소설은 첫눈이 오고 추위가 시작된다는 날이다. 실제로 1981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지역에서 첫눈이 온 날의 평균값이 11월22일이다. 올해는 조금 이른 18일에 첫눈이 내렸다. 지금은 소설을 지나 ‘큰눈’이 내린다는 뜻의 대설(大雪, 12월7일)로 넘어가는 기간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한파와 함께 많은 눈이 왔다. 기상청은 12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오고 1월에는 일부 내륙 지방에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가는 곳도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가끔씩 내리는 눈은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호쾌한 천리설(끝없이 펼쳐진 눈밭)도 자주 보게 되면 낭만에 그칠 수가 없다.

더 심란한 것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정치적 추위’다. 이제 ‘종북’이라는 말은 상대를 공격하고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되고 있다. 손돌은 오해를 받아 숨졌지만 지금의 권력자들은 의도적으로 잇따라 손돌을 만들어낸다. 종교인 등의 잇따르는 시국선언은 이를 이겨내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소설·대설 이후에는 무지개가 뜨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늦기 전에 희망과 화합을 상징하는 무지개를 보고 싶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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