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지난달 29일 한국건강증진재단은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을 제정·발표하였다. 음주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이에 따르면 1회 음주 시 남자는 소주 5잔, 여자는 소주 2.5잔까지를 ‘건강을 해치지 않고 마실 수 있는 저위험 음주량’으로 정하였다. 일부 언론은 이를 적정 음주 기준으로 표현하였다. 필자는 이 가이드라인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 가이드라인은 우리나라 여성의 음주 양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대다수는 한번 술자리에서 1~2잔 이내로 적게 마시고 있다. 보건학적 견지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2011년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음주 경험이 있는 성인 여성 중 53%는 한번에 1~2잔만 마셨다. 나이가 든 여성의 음주량은 더 적었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지난 1년간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성인 여성 32%가 빠져 있다. 이들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은 술을 1~2잔 이내로 마시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증진을 책임진다는 기관에서 한번에 2.5잔까지는 괜찮다고 발표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은 음주 권고 가이드라인인가?
둘째, 음주 권고 기준 설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음주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조금만 이동시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보건학적 사례를 통해 평균값이 올라가면 극단에 위치한 사람 수가 크게 증가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한 사회의 평균 혈압 수준이 높아지면 고혈압 환자 수는 크게 많아진다. 비만지표 평균값이 조금만 올라가도 고도비만 인구가 급속하게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음주에 대한 사회적 권고량을 허용적으로 바꾸면 고위험 음주자 수가 많아지고 음주로 인한 폐해가 커질 수 있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의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은 우리나라 여성의 음주 문제를 향후 더 키울 위험성을 안고 있다.
셋째, 최근 발표된 세계 질병부담 연구 결과에 따르면 67가지 건강위험 요인 중 우리나라에서는 음주가 가장 중요한 건강위험 요인이었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술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였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 확립된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술은 간 질환은 물론이고 식도암, 대장암, 유방암, 교통사고와 자살의 원인이 되며, 임신 중의 음주는 태아에게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국제암연구소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안면 홍조)을 가진 사람에게 암 발생 위험이 높다고 명시하고 있다. 알코올의 체내 대사에 문제가 있어 중간대사 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5배 이상 높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발암물질이다. 안면 홍조가 거의 없는 서양인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음주 시 안면 홍조를 겪는 사람의 비율이 30%에 이른다. 즉 우리나라 국민은 음주에 취약하다. 선진국의 음주 권고량을 그대로 쓰기 어려운 이유이자 우리나라 음주 권고량 설정에서 좀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은 어떻게 이런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게 되었을까? 짐작건대, 이는 우리나라 여성 음주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서양인의 유사한 음주 권고량을 참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음주량이 높은 서양 여성에게 그와 같은 권고량은 ‘음주량을 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여성들에게 음주량을 늘리라는 이야기가 된다. 안면 홍조를 겪는 30%의 여성은 ‘술 더 마셔도 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건강증진재단의 애초 의도와 달리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음주량을 높일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은 철회되어야 한다.
강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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