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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KTX 자회사 설립 / 정정훈

등록 2013-12-10 19:01수정 2013-12-17 08:40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철도공사 이사회는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자회사 설립 안건을 의결했다. 철도노조는 “철도 민영화의 전단계”라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정부와 철도공사는 “민영화가 아니라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주장한다. 쟁점은 비교적 간단하다. 무엇을 위한 경쟁의 도입이냐는 것이고, 경쟁체제 도입의 결과가 결국 민영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첫째,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를 설립함으로써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부분이다. 정부의 이런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고, 국민들에게 설명되지 않는 의문들이 너무 많다. 이는 국회의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국회의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케이티엑스 경쟁체제 도입에 여당 의원은 절반(50%, 25명)만이 찬성했고 야당 의원은 98%(49명)가 반대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우선 모회사와 자회사가 경쟁한다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정부는 저가항공사의 경우를 예로 든다. 그러나 아시아나와 그 자회사인 에어부산은 기본적으로 서로 경쟁하지 않고, 보충한다. 아시아나가 에어부산을 설립한 이유는 다른 저가항공사들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케이티엑스가 경쟁해야 할 진짜 대상은 저가항공사들이다. 그런데 정부와 철도공사는 케이티엑스를 쪼개어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다음으로 경쟁 자체가 성립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시민들은 지하철을 탈 때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서비스를 비교해 가면서 타지 않는다. 케이티엑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민주당 박수현 의원실이 공개한 철도공사의 ‘제2철도공사 설립 검토 의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의견서는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기존 서울·용산발 케이티엑스와 주된 이용객이 달라 경쟁은 발생하지 않고 지역 독점으로 귀결”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와 철도공사가 경쟁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이 철도공사 내부적으로도 검토된 바 있는 것이다.

설사 경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는 수익성이 높은 케이티엑스 사업만을 운영한다. 철도공사는 케이티엑스로 돈을 벌어 적자를 내는 무궁화호·새마을호 등을 운영해야 한다. 애초에 경쟁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모래주머니를 잔뜩 찬 채로 100미터 달리기에 나가서 이기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철도노조는 케이티엑스 분할로 인한 철도공사의 적자를 연간 약 4000억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둘째,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 설립이 철도 민영화와 무관한 것이냐는 부분이다. 논쟁은 주로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 자체가 민영화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 설립을 ‘철도 민영화의 우회로’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자회사의 민영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도노조 등이 우려하는 것은, 케이티엑스 사업의 분할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된 철도공사가 적자를 보전할 수 없는 무궁화호·새마을호 등의 지역/적자노선과 화물운송 부문을 민간에 개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 설립이 철도산업 민영화의 마중물이라는 비판은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철도공사는 위와 같은 의문과 우려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시민들의 보편적 이동수단과 관련된 문제를 이사회 의결이라는 요식 절차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이제라도 케이티엑스 자회사 설립과 관련한 상식과 민주적 정당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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