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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뽁뽁이

등록 2013-12-15 19:15

‘뽁뽁이’는 제 쓸모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미국의 발명가 앨프리드 필딩과 마크 샤반은 ‘뽁뽁이’를 만들어 벽지나 온실 단열재로 팔려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여기서 포기했다면 지금의 ‘뽁뽁이’는 없었을지 모른다.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회사를 차렸고 제품의 이름을 버블랩(Bubble Wrap)이라 지었다. 첫 고객은 비싼 기업용 컴퓨터 운반 방법을 찾던 아이비엠(IBM)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쓰임새는 벽지도 단열재도 아닌 포장재였다. 1960년대 초입의 일이다.

오십여년 전 발명자가 이루지 못했던 ‘단열재’의 뜻이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뽁뽁이’의 귀환”이다. 포장재뿐 아니라 노리개로도 유용한 ‘뽁뽁이’는 2009년 9월 ‘콘크리트 단열 보온 양생공법’으로 뉴스에 등장한다. 같은 해 12월, ‘겨울철 하우스 참외 품질과 수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건설과 농업 부문에서 시작한 ‘뽁뽁이’의 단열·방풍 재주는 2011년에 대중적으로 빛을 발한다.

얼마 전 ‘에어캡 공장 바빠요’라는 자막에 ‘단열 효과를 내는 에어캡, 이른바 뽁뽁이 판매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ㅁ방송) 원 상표명은 ‘버블랩’이니, ‘에어캡’이나 ‘뽁뽁이’나 속칭인 것은 한가지이다. 그럼에도 ‘에어캡’은 방송용어이고 ‘뽁뽁이’는 속칭으로 다루어야 할까 싶었다. 프랑스어 벨벳(velour)과 갈고리(crochet)를 합쳐 만든 상표명 ‘벨크로’(velcro)에 ‘찍찍이’가 밀려나는 것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뽁뽁이’(버블랩)와 ‘찍찍이’(벨크로)처럼 서양은 생김과 구실을 따져 명칭을 만들고 우리는 의성어에서 이름을 따올 때가 많다. 기능에서 비롯한 영어 ‘플런저’(plunger)는 우리에게 소리를 본뜬 ‘뚫어펑(뻥)’으로 통한다. 어설픈 언어 사대주의는 넘어서야 한다. 이참에 ‘뽁뽁이’와 ‘찍찍이’, ‘뚫어펑(뻥)’을 제도권 언어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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