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다. 그와 관련된 행사도 많다. 정기적으로 축제를 벌이는 지자체가 8곳에 이르고 그를 기리는 사당은 30곳이 넘는다.
이순신의 기일은 셋이다. 그는 1598년 11월19일 조선과 일본 수군 사이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숨졌다. 음력인 11월19일을 당시의 태양력(그레고리력)에 맞춰 환산하면 12월16일이 된다. 하지만 올해 달력을 보면 음력 11월19일은 12월21일이다. 올해는 양쪽 기일이 모두 이번주에 있으나 보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음력 11월19일을 그대로 양력으로 옮기는 경우다. 이순신 관련 행사는 세 날짜 부근에 두루 분포돼 있다. 날씨가 덜 추운 11월19일 전후에 비교적 많은 편이다. 물론 후손들은 음력으로 제사를 지낸다.
이순신 출생일과 관련한 행사들은 양상이 좀 다르다. 음력 3월8일을 그레고리력으로 바꾼 4월28일이 주로 쓰인다. 3월보다는 4월이 날씨가 좋은 게 이유가 될 법하다.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율리우스력을 사용해 4월18일로 하는 게 정확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 거의 모든 나라가 쓰는 그레고리력은 1582년부터 도입됐다.
이순신은 때와 장소, 신분 고하,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 배우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47살)부터 숨질 때(53살)까지 남긴 그의 일기와 보고서에는 대략 15명의 ‘스승’이 등장한다고 한다. 손자·오자·태공망·장량·제갈공명·악비 등이 그들이다. 이순신은 이들의 삶에서 얻은 지혜와 열정, 열망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었다.(<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
이순신은 대장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전투에 참가했고 백성의 생존까지 고뇌했다. 그는 “시작과 끝을 항상 같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믿음을 숨지는 순간까지 실천한 사람이다.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들과 대비가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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