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회장
최근 ‘소비자시민모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일본·중국 등 세계 15개국 가운데 한국의 스마트폰 가격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최신폰이라 할 수 있는 갤럭시노트3(106만7000원)는 가장 싼 영국(78만6800원)보다 1.4배, 미국보다 1.3배(84만7000원)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중저가폰과 우체국 알뜰폰이 출시한 지 두 달 만에 가입자 2만명을 돌파하는 등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높은 스마트폰 가격과 알뜰폰 열풍, 최근의 두 언론 보도는 현재 우리나라 단말기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지금까지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결합해 단말기와 서비스를 함께 묶어서 유통시킴으로써, 소비자 선택권을 크게 제한해 왔다. 휴대폰을 사기 위해 대리점을 방문하는 소비자는 직원이 안내하는 가격에 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대리점 직원은 단가표를 보고 ‘오늘은 정책이 좋아서 보조금을 많이 줄 수 있다’며 흥정을 시도한다. 나이가 지긋한 장년층은 어느새 ‘호갱님’이 돼버린다. 소비자는 정확한 휴대폰 가격을 알 수도 없다. 현재의 단말기 시장에서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호갱님’이 되고, 값비싼 휴대폰을 자주 바꾸는 소비적인 소비자와 극소수의 ‘폰테크족’만이 높은 보조금을 받으면서 이득을 누린다.
우리나라는 2009년 스마트폰이 도입된 뒤 휴대전화 가격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대리점에서는 소비자에게 고가의 폰만을 권장해 피처폰이나 중저가 스마트폰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최근 엘티이(LTE)폰의 등장은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을 90만~100만원대 프리미엄폰 위주의 시장으로 만들었다. 또한 국제 시장조사 업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단말기 교체율은 67.8%로 세계 1위다. 월 단위로 보면 16개월 정도인 셈인데, 100만원짜리 단말기를 2년도 되지 않아 바꾼다는 얘기다. 결국 이러한 잦은 단말기 교체가 우리나라를 2013년 7월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계통신비 비중 1위를 유지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와 중저가 휴대폰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에서는 보조금 공시를 통해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는 보조금 차별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단말기 구입 없이 서비스만 단독으로 가입하는 소비자에게는 보조금 대신 요금 할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중저가 단말기 시장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결국 이 법은 자급 단말기나 알뜰폰(MVNO) 활성화를 유도해 단말기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가격 경쟁을 유발시킬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제조사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산업이 붕괴한다거나 휴대폰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법안에 반대한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중저가폰 대신 90만~100만원대의 고가 프리미엄폰을 짧은 기간 사용하고 교체하는 소비자들을 양산하는 현 시장을 유지해 계속해서 막대한 이익을 향유하려는 기득권 때문은 아닐까?
우체국 알뜰폰 성공 사례에서 보듯이, 소비자는 값싼 단말기와 요금에 목말라 있다. 우리나라 단말기 시장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지금까지는 이통사들과 일부 제조사들이 품질과 서비스가 아닌 높은 자금력으로 단말기 시장을 교란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높은 통신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제 이통사들과 제조사들은 보조금이 아닌 품질과 서비스로 경쟁해야 한다. 시작은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이다.
김홍철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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