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 광주문화재단 사무총장
중국에서 ‘작곡가 정율성’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27일 중국을 방문해 천안문 광장 앞에서 시진핑 총서기의 영접을 받을 때 울려 퍼졌던 <인민해방군가>도 그가 작곡했다.
2014년 정율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는 중화사회문화발전기금회 산하 정율성음악기금 주관으로 대대적인 기념사업이 준비되고 있다. 8월에 베이징에서 대형교향합창 공연과 또다른 예술단의 정율성 미공개작 연주 및 합창, 도서 영상물 출판, 중화사회문화발전기금의 서예전, 베이징에 정율성기념관 건립계획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 제10회 정율성음악제를 개최하는 광주문화재단에도 중국의 유명한 ‘베이징연예집단’과의 한-중 전통문화 교류 공연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정율성은 본디 한국인이었다. 1950년 중국 국적을 취득하여 1976년 62살로 숨질 때까지 26년 동안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일생 고국을 잊지 못하는 디아스포라로 살았다. 1914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나 기독교계 학교인 숭일중학교를 다니다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면서 피아노·바이올린과 성악을 배웠다. 정율성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 2명의 형, 누이 등도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요원 또는 군인, 공산당원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그의 아내 정솔성은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초대 네덜란드 대사를 맡을 만큼 중국 정부의 중요인물이었다. 정율성은 많은 음악 작품을 남긴 공으로 중국 창건 50돌에 신중국 창건에 기여한 100대 영웅모범인물로 뽑혔고, 중국 3대 작곡가로도 추앙받고 있다.
중국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 지난 9월28일 광주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부 장관 회담 때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정율성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베이징에서 들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정율성의 음악성은 일본인에게도 공감을 주고 있다. 지난 9월 광주에서 열린 정율성 작품연주회에서는 일본 연주자 3명과 한국 연주자 1명이 함께 공연했다. 당시 상황은 일본의 우경화로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할 때였는데 무대에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일 연주자들이 정율성 음악에 몰두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중·일 문화부 장관과 2014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광주·취안저우(천주)·요코하마 시장들은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3국의 공연을 함께 관람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념이나 국경보다는 예술로서 3국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일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정율성의 가족들도 근거부족, 또는 한때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제외되어 있다. 식민지시대에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옷을 입고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고, 중국 땅 곳곳에 묻혀 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대륙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선현들의 기념사업을 부탁했고, 베트남 방문 때도 한때 총칼을 겨눴던 베트남(과거 월맹) 지도자 호찌민의 묘를 참배했다.
이처럼 시대적 환경이 바꿔졌으니 이제는 사망하여 중국 벌판을 헤매고 있는 한국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공자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항일독립운동만큼은 인정해 준다거나, 기념사업에 대해서 외교적 차원에서 배려하는 포용성을 보였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그 정도는 수용할 만한 역량이 생겼다고 본다.
김성 광주문화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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