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불통민국 소통특별시 / 권혁철

등록 2013-12-31 19:25수정 2013-12-31 21:41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박근혜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덕을 봤다. 물론 박 대통령은 박 시장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박 시장의 도움을 받은 게 맞다.

지난 9일 전국철도노조가 파업을 한 뒤 정부는 1주일가량 서울시와 공동 운행하는 지하철 1·3·4호선과 분당·경의·경춘·중앙선 같은 수도권 전철은 파업 이전과 마찬가지로 운행했다. 수도권 전철의 운행 차질은 여론의 향배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이다.

코레일이 대체인력 피로 누적 등을 이유로 수도권 전철 감축 운행을 검토하던 12월 중순 돌발변수가 생겼다. 회사 쪽과 임단협을 벌이던 서울지하철노조가 12월18일 오전 9시부터 서울지하철 1~4호선 파업을 선언했다. 서울지하철노조 파업이 철도 파업과 맞물리면 수도권 전철 운행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이 임박했을 때, 한겨울 시민들의 불편을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파업 하루 전인 17일 밤 노사 협상 타결로 서울지하철노조는 파업을 접었다. 서울시의 노력으로 이른바 ‘수도권 교통대란’을 막아 정부의 부담을 덜어줬다는 측면에서 박 대통령은 박 시장의 신세를 진 셈이다.

철도 파업과 지하철 파업을 풀어가는 청와대와 서울시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특히 박 대통령과 박 시장이 노조를 대하는 자세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철도노조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철도노조를 ‘철밥통 기득권 세력’으로 압박했다. 박 대통령은 철도 파업 과정에서 “민영화하지 않겠다는데 왜 내 말을 못 믿느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노조가 대통령의 말조차 안 믿는 것은 불신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소통하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울지하철 노사가 파업 직전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서울시와 지하철 노사 간에 2년가량 쌓은 신뢰의 공든 탑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취임 초 지하철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고, 서울시에 노동보좌관 직제를 신설하고 노사간 대화와 소통을 통해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했다.

청와대와 서울시는 협상을 하는 자세도 많이 달랐다. 박 대통령은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미래를 기약 못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협상 무용론이다.

박 시장은 일방적인 통보나 형식적인 절차 대신에 지하철노조와 17번이나 이어진 길고 긴 협상을 계속했다. 박 시장은 지하철노조와 협상을 타결한 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핵심 쟁점이었던 정년 연장은 사쪽 의견대로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감사원 지적사항인 퇴직금 누진제는 노조 쪽 의견대로 2014년부터 폐지하기로 하면서 노사 협상을 중재했다.

박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 철회 뒤인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져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혁의 근본 취지는 어디로 가버리고 국민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유언비어로 규정한 것이다.

박 시장은 30일 2014년 신년사를 내어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뜻을 지닌 ‘방민지구 심어방천’(防民之口 甚於防川)이란 옛말을 인용했다. 그는 새해 화두로 ‘이통안민’(以通安民)을 내걸었다. ‘소통으로 시민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박 시장은 2014년은 서울특별시가 ‘소통특별시’가 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불통민국에서 소통특별시 선언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