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에 사는 한 노인이 있다. 매일 센트럴공원에 가서 산보를 하는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보니타’라고 말을 건넨다. 스페인어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상대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양쪽 모두 즐거운 순간이다. 노인은 이 얘기를 하면서 ‘나는 일종의 예술가야’(I am a sort of artist!)라고 글을 끝맺는다. 수십년 전 공부한 영어 참고서의 ‘a sort of’ 관련 예문이다.
자주 보는 사람이라도 데면데면하기 쉬운 게 도시 생활이다. 뭔가 찝찝하지만 분위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 이사를 한 김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로 했다. 반응은 곧 나타났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인사를 주고받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생활과 관련된 간단한 대화도 추가됐다. 며칠 만에 보는 사람이면 괜히 반갑기도 하다. 조금씩 이웃이 돼가는 셈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즐겁게 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따져본 주제는 아니지만 금방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기분으로 지내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미국 사회학자 솔라 풀(1917~1984)은 한 사람이 평생 의미있게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는 3500명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언젠가 ‘최근 일주일 동안 나와 말을 주고받은 사람의 수’를 세어본 적이 있다. 서로 이름을 아는 사람은 2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여러 차례 만난 사람은 불과 수십명이다. 일상생활의 정서는 이들과 만날 때 어떤 기분을 갖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 삶의 조건은 팍팍하다. 해가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하지만 어쨌든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내가 즐거워야 다른 사람도 즐거워진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전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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