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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남북관계 ‘신뢰’의 조건 / 박병수

등록 2014-01-05 18:46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연말 박근혜 대통령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는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우선 명사들의 칼럼을 언론사에 공급하는 외국 기관에 대통령이 글을 보내는 일 자체가 드문 일 같다. 지난 한 해 대북정책을 돌아보고 새 각오를 다진 내용은 한 해를 매듭짓는 세밑의 성찰 관행과도 어울린다.

박 대통령은 기고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대북정책의 핵심 과제”였다며 지난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비방”에 굴하지 않고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했다고 했다.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선 “신뢰를 쌓아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대화를 통해 작은 일부터 협력하고 약속을 지켜야 신뢰가 쌓일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신뢰 프로세스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내놓았다.

그렇지만 지난해 남북간 신뢰 쌓기의 초라한 성적표에 대한 성찰이 안 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정말 모든 게 북한 때문일까. 지난해 6월 북한의 장관급 회담 제의를 걷어찬 건 사실상 남쪽이다. 이유도 회담 내용이 아니라,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수석대표의 ‘급’ 때문이었다.

신뢰가 뭘까. 박 대통령도 꼭 집어 밝히진 않고 있다. 그러나 맥락을 살펴보면 ‘약속한 것은 지킨다’는 정도의 통념을 상정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실제 북한의 약속 불이행에 신뢰의 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지난해 11월 <비비시>(BBC)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취소에 대해 “날짜까지 받아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신뢰가 쌓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가치다. 그러나 “신뢰합시다” 외친다고 생겨나진 않는다. 신뢰하고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는 조건과 환경이 성숙돼야 한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약속 파기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나라가 몇이나 될까. 실제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은 2년 뒤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파기됐고, 41년 소-일 중립조약은 45년 소련의 선전포고로 휴지 조각이 됐다.

지난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그래도 압권은 미국이 처음으로 “실망했다”며 비판하고 나선 일일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일본이 미국의 동맹이 아니라 새 골칫거리”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 일로 동맹관계가 흔들릴 걸로 전망하는 이는 별로 없다. 두 나라가 그 이상의 이해관계와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가 위기라고들 한다. 거의 신뢰 제로 수준이지만 그래도 관계가 지속되는 것 역시 정치·경제·문화 등에서 공통의 이해 기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현실을 남북관계로 옮겨 보자. “약속을 지키라, 진정성을 보이라”고 윽박질러 될 일일까. 아니다. 함께 지킬 이해관계를 쌓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일정 선을 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재가동의 공을 신뢰 프로세스로 돌렸다. 북한 당국자의 머리에 들어가보지 못했으니, 북한이 재가동에 동의한 속내를 알 순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남북간 이해를 함께하는 지점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때도 살아남았고 지난해 중단됐다가 되살아난 끈질긴 그 생명력을 달리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남북이 이해를 함께할 곳이 개성공단뿐이랴. 금강산도 있고, 4년 전 5·24 조치로 막힌 다양한 남북경협도 있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야 한다. 그러면 서로 보호할 수밖에 없는 공통의 이해 기반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기반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어찌 화해와 평화, 나아가 통일의 초석이 되지 않겠는가.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한 것에 대해 정부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며 싹부터 자른 것은 그래서 더 유감스럽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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