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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하여 / 이병철

등록 2014-01-06 18:51수정 2014-01-07 17:30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선임연구원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선임연구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 햇수로 3년이 됐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모부 장성택을 속전속결로 처형하기 전까지만 해도 다수의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이들의 예측과 분석은 과거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김정일 체제 조기 붕괴론보다 훨씬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중한 비관론이 ‘확실한 비관론’으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연말 송년회에서 만났던 북한 전문가 지인들의 2014년 북한 정세 전망과 평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연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회담을 위한 회담이 돼서는 안 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회담이 되도록, 그런 회담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신년사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여 빈틈없는 안보태세와 위기관리체제를 확고히 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면서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역시 시무식에서 “북한이 처한 여러 상황, 조건을 감안할 때 북한 내부에 잠재적으로 불안정 요소가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세 차례 핵실험 등으로 햇볕정책의 주술이 풀리면서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 눈에 비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어느새 양치기 소년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신뢰를 쌓기 위해 보여야 할 진정성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고 판단하는가이다.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지만 진지한 노력이라는 단어 역시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노력의 무게는 체중계나 온도계처럼 계량화하기가 불가능하다. 노력의 무게로 만들어 낸 결과만이 수치로 측정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정책을 좀더 현실주의 시각에서 접근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를테면 북한을 합리적 행위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자국의 냉철한 손익계산에 따라 이익의 극대화를 시도하고, 최선의 합리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행위자로 바라보는 일이다. 북한에 대한 신뢰, 원칙, 도덕 등을 대한민국의 국익에 우선하는 가치로 두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주변상황이 매우 엄중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남북관계가 계속해서 악화될 경우 미국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례적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거리가 멀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만 한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안보 참모들이 현대판 ‘재조지은’(再造之恩)에만 집착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한-미 동맹의 정신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되지만 한-미 동맹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뿌리 깊은 심리적 경사 역시 경계할 일이다. 남과 북 어느 한쪽이 미국과 비정상적 관계를 유지하는 한, 다른 한쪽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비정상적 관계를 해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지난달 20일 발표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남북한 간 평화체제 구축을 염두에 두고서 단계적으로 독자성을 확보해나갈 국가전략을 창조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언급한 비정상의 정상화인 셈이다. 나아가, 중국이 미국에 견줄 만한 국가로 부상하고, 일본이 보통국가라는 미명하에 ‘자유롭게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할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 역사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교훈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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