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범중엄은 권신의 권력 제한과 농민 부담 감소 등을 뼈대로 한 개혁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이권을 빼앗긴 하송 등 수구파들은 범중엄, 구양수 등을 ‘당인’(黨人, 파벌분자)으로 몰아 좌천시켰다. 격렬한 정치투쟁 속에서 구양수는 ‘붕당론’(朋黨論)을 썼다. 이 글에서 구양수는 후한 말기 환관의 폐단을 비판한 두밀 등 개혁세력이 되레 환관에게 ‘당인’이라 몰려 탄압받은 일, 당나라 말기 주전충이라는 간신이 ‘청류’라 불리던 30여명의 대신들을 몰살하고 “이들은 청류이니, 탁류에 던져도 된다”며 주검을 황하에 버린 일 등 ‘당인’의 비극적 역사를 일깨운다. 그는 “소인배는 이해관계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기 때문에 거짓 붕당을 만들 뿐이며, 군자는 도의와 믿음을 바탕으로 사귀기 때문에 참된 붕당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익과 재물을 탐하여 다툼을 일삼다 혈연관계조차 깨지는 게 소인배의 사귐”인 반면, “처음과 끝이 같은 게 군자의 사귐”이기 때문이다. 군주가 할 일은 오로지 군자와 소인배를 구별하는 것이며, “소인배의 거짓 붕당(僞朋)을 물리치고 군자의 참된 붕당(眞朋)을 쓰기만 하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爲人君者, 但當退小人之僞朋, 用君子之眞朋, 則天下治矣.)이라는 게 구양수의 주장이었다. ‘당인’으로 몰려 탄압받은 이가, 군자라면 모름지기 참된 붕당으로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에서 제기한 것이다.
소인배들도 이권을 위해 똘똘 뭉칠 수 있고, 군자들도 작은 견해 차이로 갈라서는 현실을 볼 때, ‘붕당론’은 이상주의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군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소중하다. 소인배와 야합하는 이나 분열을 일삼는 이는 군자라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야권 연대’를 하니 마니 하는 논의보다,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누구를 떨어뜨리기 위한 네거티브 연대는 유효기간이 지났다.
<주역> ‘계사전’은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무쇠도 자를 수 있고,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난초의 향이 난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고 했다. 대인배 군자들이라면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반드시 단결할 것이니, 두려워할 게 무엇인가.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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