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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무상급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이범

등록 2014-01-22 18:52수정 2014-01-22 22:56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무상급식은 ‘복지’를 우리나라 정치의 한복판으로 몰고 온 주역이다. 2009년 김상곤을 당선시킨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처음 주목을 끌기 시작하여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돌풍을 일으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연쇄반응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셀프 탄핵’ 및 안철수·박원순의 등장으로 이어지면서 정치 지형도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제 무상급식에 대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무상급식은 전반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산을 어떤 기준으로 우선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을 크게 높여 놓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재정 문제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서 오세훈 시장이 한강 르네상스에 쏟아부은 돈 때문에 과거와 달리 욕을 먹게 된 것이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 이후 서울시 부채를 3조원 줄였다는 점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업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민감해진 대중적 감수성에 호소하여, 예를 들어 새누리당에서 ‘무상급식을 폐지하면서 생기는 재원으로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여론이 어떻게 돌아갈까? 아니, 이런 공약이 꼭 ‘보수적’ 공약일까?

물론 교육적으로는 무상급식이 바람직하다. 이른바 ‘낙인 효과’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무상급식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낙인 효과를 완벽히 예방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이 마련된다면 무상급식 이외의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도 가능하지 않은가?

학생인권-교권 프레임을 벗어나는 출구전략도 필요하다. 일단 ‘내 몸’에 대한 감수성이 과거 세대보다 훨씬 높아진 점을 고려하여 체벌이나 두발규제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금지를 유지하되, 교사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수업방해’와 ‘교사모욕’ 행위에 대해 현장에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도 대응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가 활용하기엔 지나치게 번거롭다. 아울러 교사 개개인의 권한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진보적 교권이론’을 구체화하여 공약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는 꼭 지키고 확산시켜야 하는 소중한 성과다. 하지만 ‘이게 좋은 거니까 지켜주세요!’ 해봤자 유권자가 설득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기도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혁신학교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과 파생상품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강남형 혁신학교, 영어교육 혁신학교, 산촌유학 혁신학교 등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학교들이 기존의 혁신학교와 많이 다른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선거에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학교를 ‘진보적 교권이론’과 결합시키면 새로운 교육 모델의 설득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그밖에 조금만 상상력을 일으켜 보면 비용과 불편을 덜어주는 여러 가지 교육서비스 정책을 떠올릴 수 있다. 사교육이 독주하는 논술교육을 공교육에서 책임지는 방법은 없을까? 중저가 영어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온라인/모바일 영어학습 시스템이 가능하지 않을까? 공공건물·학교의 저녁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반값 어학원’은 어떤가? 일제고사의 틀을 거부하면서도 기초학력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등등.

하나의 큰 의제나 정책이 전체 선거판을 뒤흔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무상급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 정권 초기라 그런지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먹힐지도 미지수다. 사람들의 마음과 감수성의 변화를 잘 살피면서 지방선거 교육 의제를 한층 더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마련해야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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