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동 교수
새해 들어 우리 정부와 일부 언론이 한반도 통일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고 있다. 북한과 대화 및 화해 의도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통일을 거론하기 때문에 그 통일은 흡수통일을 가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향후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 북한이 붕괴할 경우 흡수통일의 성패 여부는 북한지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할권 보유 여부와 직결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한국전쟁 기간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 시, 유엔 총회는 1950년 10월7일 북한지역 통치를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패망한 북한지역을 유엔사령부가 접수하고,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을 설립하여 통치한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을 대한민국 정부에 흡수시키지 않고, 유엔을 통한 국제관리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한민국의 북한에 대한 관할권 문제는 1948년 12월12일 유엔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 감시하에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과반수의 한국인들이 사는 지역의 합법정부이고, 한반도에 그러한 합법정부는 유일하다는 결의를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합법정부가 있고, 그 정부는 남한만을 관할한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북한은 유엔에 의하여 국가로 인정되었다. 유엔헌장 제4조는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만이 유엔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북한지역은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지역이 되었다.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되어 있다. 국제사회에서 이 헌법의 내용을 인정한다면 북한이 붕괴되었을 때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이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의 관할권을 남한만으로 규정한다면 북한의 흡수통일은 어려워진다.
독일은 어떻게 했을까? 서독의 콜 수상도 동독이 완전히 무너지면 흡수통일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동독의 붕괴 과정에 개입하여 연합을 제의하기도 하였고, 결국은 1990년 3월 동독지역에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총선거 결과 서독에의 편입을 내세운 데메지에르 정부가 탄생하였다. 동독 주민들이 총선거를 통하여 서독으로의 편입 의사를 보인 것이다.
이후 동서독 정부는 통일조약을 체결하여 통일을 하였다. 따라서 독일통일은 순수한 흡수통일이라기보다는 ‘합의형 흡수통일’이었다. 이와 같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인 방식을 택하였기 때문에, 독일통일 승인을 위한 2+4 회담에서 아무런 반대 없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만간 북한이 붕괴된다면 국제사회가 한국의 북한 흡수통일을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지역을 유엔이 관리하려던 것과 같이 북한지역에 대한 국제관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붕괴되는 과정에 유엔 안보리가 국제관리 결의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킬 수도 있다.
흡수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서독이 했던 것처럼 북한지역에 합법정부를 탄생시키고, 그 정부와 남한정부가 합의하에 통일을 하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의사를 통하여 남한으로의 편입을 지지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의 편입을 지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이 동경할 수 있는 남한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서독은 1963년부터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동독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고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 합의통일 또는 흡수통일, 어느 것도 북한지역의 주인인 북한 주민들의 의사와 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계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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