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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통일 대박이라도 났으면 / 권혁철

등록 2014-01-28 19:33수정 2014-01-28 22:50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흑백 43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흑백 43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싫다. 당연히 2012년 12월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 나는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도 싫다.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밝히지만, 나는 대선 불복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나는 박 대통령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그 권능을 100% 존중한다. 내가 박 대통령과 그가 속한 정당을 싫어한다는 것은 정치인과 정당이 터잡은 가치관과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한 것이 숙청 이유가 되는 휴전선 이북과 달리,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된 대한민국 시민의 정치적 권리다.

내가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는 이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61년 5·16 군사쿠데타와 79년 12·12 군사반란과 80년 5·18 내란을 벌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통일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태도 때문이다.

나는 지난 6일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심드렁하게 지켜보다 박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 말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 발언을 두고 ‘민족사의 소명인 통일을 도박에 비유해 경박하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나는 “통일은 대박”이란 주장에 솔깃했다. 통일에 무관심한 세태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통일 논의가 활성화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통일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면 대개 “통일이 밥 먹여 주느냐”는 냉소적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이럴 경우 나는 “통일이 밥 먹여 준다”며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곤 했다. 통일에 무관심한 요즘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나 ‘핏줄도 하나 민족도 하나’란 통일운동 세력의 오래된 설명은 진부하게 들릴 것이다.

대부분이 통일에 무관심하지만, 내가 10여년 전 대학원에서 북한·통일 공부를 할 때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실익을 챙기려고 통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토지평가업무를 하는 감정평가사 여러명과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다. 이들은 남북이 통일되면 국유 상태인 북한의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욕을 갖고 북한을 공부했다.

나는 2001년 봄 서울에서 주한미군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논의 주제가 ‘통일한국군의 쿠데타 방지 방안’이었다. 대략 이런 논의였다고 기억한다. 남북이 통일하면 군사 통합이 이뤄지고 한국에선 징병제가 폐지될 것인데, 이 경우 장교는 남한 출신이 맡겠지만, 병사들은 북한 출신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통일한국군의 대다수를 차지할 북한 출신 병사들이 차별을 받으면 최악의 경우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니 장차 미국이 이를 억제할 방안을 놓고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였다.

나는 통일대박론이 수면 밑에 가라앉았던 통일 논의를 물 위로 끌어올리고 그동안 실리에 발 빠른 사람들이 선점해온 통일 준비를 공론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 주장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첫걸음이 남북대화에 대한 적극성일 것이다. 통일은 북한이란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25일 미국 공화당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로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데 시간만 벌어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통일대박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

“아무리 적의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의 한쪽 손을 붙들고 있으면 그가 나를 칠지 안 칠지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 71년 남북대화에 나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말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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