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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조리복을 입은 과학자 / 김우재

등록 2014-02-10 18:47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얼마 전 <네이처>가 황우석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국내 언론들은 이번에도 앞다퉈 그 소식을 알렸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열성적인 지지자들로부터 3500억원의 투자를 받아 수암생명과학연구재단을 설립했고 애완견 복제를 주종목으로 매머드 복제까지 시도중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연구비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정부로부터 조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황우석의 열렬한 지지자다. 건국 이래 과학적 영웅을 가져본 적 없는 한국의 민심은 여전히 황우석이라는 영웅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기류가 심상치 않자 네이처는 이례적으로 해당 기사가 황우석의 복권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사설을 썼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다음 주에는 황우석 스캔들의 최초 고발자인 유영준의 인터뷰를 상세히 실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민간인 통화감찰을 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영웅이 되었는데, 유영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영웅은 황우석이 아니라 유영준이어야 한다. 유영준의 고발로 인해, 한국 사회는 건강한 과학의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네이처가 황우석으로 여론을 환기시킨 이유는 그다음 주에 명확해졌다. 일본 태생의 30살 무명 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가 새로운 방식으로 역분화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논문이 네이처에 실린 것이다. 국내 과학언론이 이 사건을 다룬 방식은 뻔하다. 30살의 여성 과학자, 할머니가 물려준 일본식 조리복 갓포기를 입고 실험을 하는 과학자, 그 갓포기를 입으면 할머니가 힘을 주는 것 같다는 발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연구가 몰고 올 파장과 의학적 적용 가능성, 난치병 치료의 가능성, 산업적 가치, 그리고 빠지지 않는 노벨상 수상 가능성 등으로 지면이 도배되었다. 그녀가 어떻게 과학자로 성공했는지를 다루는 기사도 있다. 답은 그녀가 데이트를 할 때도 온종일 연구만 생각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의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국내 과학언론은 일본의 황우석을 만들고 싶어한다.

우리에겐 사건의 본질과 맥락보다 사람에게 집착하는 진화적 본성이 있다. 언론은 우리의 본성을 이용할 뿐이다. 이번 오보카타의 연구로부터 한국의 과학계가 배워야 하는 점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있다. 첫째, 그녀는 연구주임이라는 5년짜리 계약직 직원이다. 한국의 정출연(정부 출연 연구원) 직책으로는 주임연구원인 셈이다. 직장에선 대리쯤 되는 직책인데, 한국 과학계에서 주임연구원이 이런 황당한 아이디어로 논문을 쓰려고 할 때 그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둘째, 그녀는 화학과 출신이다. 말로는 융합과 통섭을 외치지만, 국내 과학계 전공의 장벽은 의외로 높다. 장벽이 가장 높은 곳은 대학원과 연구원으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과학사는 바로 그 지점의 전공 장벽이 낮은 문화에서 혁신적인 연구들이 출현했음을 말하고 있다. 국내 과학계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셋째, 그녀는 할머니가 물려준 조리복을 입고 실험한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 머리 감을 시간이 없어 모자를 쓰고 실험하다 지도교수도 아닌 주임교수에게 걸려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이런 위계적이고 비상식적인 문화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최근 그녀가 자신의 누리집에 쓴 글에서 나온다. 언론이 그녀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연구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증폭하자, 그녀는 이젠 직접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며, 앞으로의 연구로 관심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몰락 후에도 애완견을 복제했다며 기자들을 불러 억지기사를 써대는 황우석과는 과학을 대하는 태도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과학자는 언론이 아니라 자연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과학을 지킬 뿐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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