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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나라의 운명을 바꿀 우정

등록 2014-02-10 19:19

염파와 인상여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두 재상이다. 맹장인 염파는 제나라를 격파한 공으로 재상 자리에 올랐다. 인상여는 환관의 가신 출신으로 신분이 낮았지만, 당시 초강대국 진나라의 부당한 요구들을 담대하고 뛰어난 언변으로 물리쳐 그 공로로 염파보다 높은 재상 자리에 올랐다. 염파는 세치 혀나 놀리는 것 같은 천출 인상여를 상관으로 인정할 수 없어,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별렀다. 인상여는 그 얘기를 듣고 염파를 피했다. 조정에서 염파보다 자리가 높았지만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고, 멀리 염파의 수레가 보이면 수레 머리를 돌렸다. 이걸 본 인상여의 가신이 실망을 토했다. 한 나라의 재상이면서 경쟁자인 염파를 그토록 두려워하며 피하는 게 실망스러워 사직하겠다는 것이었다. 인상여는 그를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나라 왕조차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인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두 호랑이가 싸우면 둘 다 온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라의 위급함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감정은 뒤로 돌린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형벌 받는 자세로 어깨를 드러내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지고 인상여의 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이토록 넓은 장군의 뜻을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기꺼이 목이라도 베어줄 수 있는 벗이 되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란 말은 여기서 왔다.

<세설신어>에는, “염파와 인상여는 비록 천년 전에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듯 늠름하고, 조여와 이지는 비록 살아 있지만 황천에 있는 존재들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조여와 이지는 잔재주 자랑으로 이전투구를 일삼은 이들이다.

공인 자리에 오른 이들의 우정과 갈라섬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에 공이 크지만, 두 사람의 분열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돌아보자.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 같은 공인들은 염파와 인상여로 기억될 수도 있고, 조여와 이지로 기억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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