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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배운다

등록 2014-02-11 18:38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일본에서는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상이 ‘즉각적 탈핵’을 내건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한다. 그는 “도쿄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 것”이라며 “복지, 재해방지, 그리고 무엇보다 도쿄올림픽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후쿠시마 재앙이 터진 나라의 수도인데도 탈핵이 주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한데다 탈핵 후보들이 단일 후보도 내지 못했다니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가? 2011년 선거에서 탈핵이 주요 이슈로 등장한 독일에서는 그즈음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 대대적인 국민 공청회와 여론화 과정을 거쳐 전면 탈핵을 선포한 바 있다. 나는 내심 도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주기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실망이 컸던 것이다.

당선자는 노령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투표율은 46.14%, 역대 세번째로 낮은 투표율로 당선됐다. 인구의 20%의 지지도 받지 못한 마스조에가 인구 1300만명에 연간 13조3000억엔(약 140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일본 수도의 행정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50%가 넘지 않는 투표가 그런 식의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문제적이지 않은가? 유권자 절반 이상이 피곤해서건 무관심해서건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저조한 투표율은 정치판 모두가 공동책임을 지고 무슨 수를 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도쿄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유권자들은 선거참여를 자신들의 가장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가진 분일 가능성이 높다. 전쟁을 치르듯 산업 역군으로 일했고, 일본이 몰락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올림픽과 같은 국제행사는 어떻게든 잘 치르고 싶어 하지만, 자신들이 기여한 기형적 경제성장이 미래 세대에 대해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반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유권자들은 탈핵 이슈 하나로 지자체 장을 바꾸려 투표장에 나올 정도로 이념적이고 싶진 않고, 경기침체로 나날이 불안한 삶 가운데 점점 더 신중해지고 있는 청장년 인구일 가능성이 높다. 계속 죽을 쑤고 있는 민주당에 거는 기대도 없고 그렇다고 예전 총리들이 벌이려던 이벤트성 선거도 기대하지 않는다.

고도의 압축 경제 성장에 주력한 동아시아, 특히 일본과 한국 사회에는 이렇게 한 나라 안에 아주 다른 문화적 문법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두 개의 진영이 생겨났다. 그리고 현재는 집단주의 진영이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그 판을 주도하는 중이다.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스위스나 프랑스 등지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런 제안이 발의되고 투표에 부쳐지는 ‘선진국’의 연륜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거대한 국가와 동일시하는 집단적/권위적 자아에서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성찰하고 결단을 내리는 개인/시민/국민/세계인으로서의 연속적 자아를 갖게 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쉽게 단축되기 어려울 것이다.

투표율과 투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나는 선거날은 축제의 날이고 선거 과정은 함께 시대를 배우는 즐거운 학습의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지자체 선거에서 선거를 축제처럼 치르는 곳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서울 성미산 마을이 그랬고, 이번 선거에는 신촌에서 청년들이 후보를 낼 거라고 한다. 공자에 이어 맹자의 정치를 공부하던 전주의 마을 공부방 주민들도 이번에 청년들과 함께 시장 후보를 내며 벌써 축제판을 벌이고 있다. 신나게 선거운동을 하던 일본의 생태전환도시 이토시마시에서는 청년 후보가 별문제 없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거대한 국가나 시장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공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맹자를 읽고 탈핵 공부를 하며 자신들의 삶을 토론하고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그런 주민들의 ‘살림 정치’가 선거로 이어지는 곳에서부터 ‘선진국형’ 선거가 시작되지 않을까?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는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괜찮은 교재가 되어주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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