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항산항심’(恒産恒心)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맹자>의 경구다. 민생을 챙기는 게 정치의 근본이란 뜻쯤 될 것이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최근 <교육이 민생이다>란 책을 냈는데, 제목이 거취를 암시하는 듯하다. 정치가 민생이고 교육이 민생이니, ‘교육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상곤은 정치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해 본다.
그는 경기도지사 출마 여부를 3월 초까지는 밝히겠다고 했다. 교육감 사퇴 시한은 3월6일이다. 그의 선택은 안철수, 박원순의 존망과 직결된다. 안철수가 김상곤을 얻으면 박원순도 숨통이 트인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또다시 숙명으로 얽혀 있다.
안철수는 17개 광역단체장 후보를 다 내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후보는 반드시 내겠다고 못박았다. 서울시장 후보를 못 내면 안철수는 정치권을 떠나야 한다고 새누리당은 압박하고 있다. 안철수로선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새누리당은 정몽준과 김황식의 대결로 경선 이벤트를 기획중이다. 만만치 않은 적수들이다. 박원순 앞엔 산 넘어 산이다.
안철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에 어지간한 후보를 내서는 승산이 적다. 잘해봤자 3등이다. 현실이 그렇다. 박원순이 낙선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게 돼 있다. 안철수는 결과적으로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에 기여하게 된다. 안철수란 이름을 가슴에서 지우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야권에선 ‘박원순 서울시장-김상곤 경기지사 패키지’를 최선의 구도로 보는 이들이 꽤 있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안철수는 김상곤 경기도지사 만들기에 전력투구한다. 민주당은 경기지사 후보를 내지 않는다. 안철수는 적절한 타이밍에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 반대’란 명분 아래 서울을 양보한다. 안철수, 박원순, 김상곤 3명이 서울과 경기를 훑고 다닌다. 대충 이런 그림이다. 정치평론가 유창선은 “안철수-박원순-김상곤이 손을 잡으면 큰 파도가 되어 한국 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논리적 비약이 있다. 그런데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곤 하는 게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다. 정치를 수학으로 풀려고 하면 틀리기 쉽다.
김상곤은 제도권에 진출한 ‘투사’ 출신들 가운데 가장 왼쪽에 설 만한 이력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커다란 성취를 이루며 눈에 보이는 실적을 쌓았다. 민주노동당이 무상급식의 씨를 뿌렸다면 김상곤은 물을 줘서 씨앗을 틔우고 이파리 무성한 나무로 키웠다. 오세훈을 사퇴시키고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를 만들어낸 것도 따지고 보면 김상곤이 촉발한 무상급식 논쟁이다. 김상곤이 주도한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희망으로 평가받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김상곤만큼 집중 견제를 받은 인물도 드물다. 정치가 바로 서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절감했을 법하다. 도지사 출마를 고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거취를 결정하면서 야권의 명운도 숙고할 사람이다. 살아온 내력을 보면 인물의 무게가 나온다.
그는 민교협 의장, 교수노조 위원장 등을 맡아 진보적 민중운동을 펼치면서도 유연한 현실감각을 내보였다. “연대는 입장과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연대란 ‘훌륭한 도덕적 결단’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다층적이고 다양한 연대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그가 ‘권력재편기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개혁과 연대의 과제’란 논문에서 제시한 연대의 원칙이다.
그에게 장차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을 연결해줄 ‘링커’ 역할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한국 정치의 양당 구도가 3당 경쟁 체제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그의 선택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임석규/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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