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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줄~푸~세’로 돌아간 박근혜 정부 / 박순빈

등록 2014-02-27 19:16수정 2014-02-27 21:09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읽고 느낀 소감을 한마디로 하면,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나 허탈했다.’ 입으로는 장밋빛 미래를 그렸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과거 레퍼토리의 나열이다. 목표와 수단, 결과와 과정이 엇갈리고 상충하는 정책들까지 뒤죽박죽 채웠다. 바탕에는 ‘줄푸세’ 정신이 깔려 있다.

줄푸세란, 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규제를 ‘풀(푸)’고, 법질서를 바로‘세’운다는 의미이다. 2007년 17대 대선 때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 맞서 내건 구호였다. 정작 실행은 17대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맡게 됐다. 하지만 기대했던 효과가 신통치 않자 5년 뒤 18대 대선에 나선 박근혜 후보는 줄푸세와 짐짓 거리를 두는 듯했다. 오히려 줄푸세와는 상극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으뜸 공약으로 내세우며 표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집권 1년 만에 박 대통령은 줄푸세를 부활시켰다. 3개년 계획의 핵심은 공공부문을 줄이며 규제를 과감하게 푼다는 것으로, 줄푸세 공약 그대로이다. 특히 규제 철폐에 대한 집념은 이명박 정부보다 더 세 보인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는 ‘규제혁신’이라고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자”고 수석비서관들에게 당부했다. 3개년 계획 담화문 발표 때는 “의료·교육·금융·관광 같은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과감히 풀겠다”고 했다. 정부 각 부처는 대통령의 거듭된 주문에 따라 ‘탈규제의 신화’에 몰입해 있다.

정부 개입을 줄여 규제를 풀면 기업 투자가 늘고, 투자 늘면 일자리 늘고, 일자리 늘면 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살아나면서 내수와 수출의 불균형이 해소…될까? 하지만 줄푸세의 공식이 현실에선 이처럼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는 오히려 반대의 사례가 많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줄푸세 정신에 충실했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적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전봇대 뽑기’와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신을 전파하며 세금 줄이고 규제 푸는 일을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연간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헛공약이 됐다. 이명박 정부 임기 5년 동안 국내 총투자(총고정자본형성)의 실질증가율을 연평균으로 계산하면 0%다.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2.6%로 참여정부의 4.9%에 견줘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내수의 다른 한 축인 민간소비 증가율 역시 2011년 이후 3년째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내수 부진의 골은 임기 막바지로 갈수록 더 깊어졌다. 고환율 정책에 힘입어 대기업 중심의 수출은 늘었으나 ‘그들만의 잔치’에 머물고 있다. 결국 참여정부에서 연평균 4.3%이던 경제성장률이 이명박 정부에선 2.9%로 떨어졌다.

섣불리 정부 개입을 축소하고 규제를 풀다가는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반면교사의 사례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탈규제의 위험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고 다시 규제의 고삐를 죄고 있는 마당에 우리나라에서만 규제타령이 울려 퍼지니 쓴웃음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3개년 계획은 2017년까지 잠재성장률 4%대 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우리 경제가 물가 상승 압력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런데 줄푸세라는 수단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줄푸세 정신의 요체는 ‘정부는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없다’이다. 정부가 성장을 주도하려면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을 펴고, 소득과 자원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며, 무엇보다 경제 주체들 간 갈등 조정과 사회통합에 힘을 쏟아야 한다. 줄푸세와는 반대의 길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줄푸세’의 부활이다 [오피니언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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