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요절 / 최재봉

등록 2014-03-03 18:37

2월의 마지막 저녁, 서울 연희동 연희문학창작촌에서는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 행사가 열렸다. 전사 시인 김남주(1945~1994)의 20주기를 맞아 벗들과 유족, 후배 문인들이 한데 모여 그의 삶과 문학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죽음의 나이 어느덧 20년. 슬픔과 고통 대신 웃음 속에 따뜻한 추억담을 나누는 분위기가 정겨웠다. 그럼에도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에서 참가자들은 고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80년대를 거의 온전히 감옥에서 보내고 1988년 말에 출옥한 김남주는 불과 5년 남짓 바깥공기를 맛보았을 따름이었다. 부정의한 사회를 향한 분노와 고된 옥살이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버릴 때 그의 나이 겨우 쉰, ‘요절’이었다.

내일모레 6일 저녁 광명시에서는 ‘기형도 시인 25주기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린다. 1960년생인 기형도는 세는나이로 서른이던 1989년 3월7일 새벽 심야영화관에서 숨을 거두었다. 3월의 막바지인 29일 강원도 춘천 김유정문학촌에서는 역시 서른에 요절한 김유정(1908~1937)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김유정의 구인회 동료였던 이상은 김유정 사후 20일 뒤인 1937년 4월17일 벗의 뒤를 따랐다. 이상의 기일로부터 불과 닷새 뒤인 4월22일은 역시 요절 작가인 김소진(1963~1997)이 세상을 뜬 날이다….

꼽다 보면 끝이 없다. 한국문학에는 유난히도 요절이 많다. ‘요절의 한국문학사’라도 써야 할 판이다. 세세한 사정이야 서로 다르다 해도, 시절의 아픔이 몸과 마음의 병으로 바뀐 것이라는 공통점은 뚜렷하다. 하필 만물이 약동하는 봄에 이들의 기일이 몰려 있다는 것도 얄궂은 노릇이다. 신생의 황홀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늘 속 죽음에도 눈길을 주라는 뜻일까. 김남주 시 전집을 엮어낸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도 가고 그곳에서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험한 세상을 비교적 편하게 살아온 자로서의 부끄러움이 내 삶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