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사회2부 기자
“기자님, 진짜 이제 아셨습니까?”
지난 7일 밤 전자우편을 열어보니 독자로부터 이런 제목의 편지가 와 있었다. “시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 여당, 야당 선거 싸움에 나라 경제, 서민 경제는 망해가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허가해 청소부 일자리라도 만들어줄 수 있게 간절하게 기사 좀 써주세요.”
이 편지는 이날치 <한겨레>에 보도된 ‘영종도 카지노’ 심사 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독자가 보낸 듯했다. 기자는 다음날인 주말에 산행하는 동안 ‘시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 이제 알고 기사를 썼느냐’는 이 편지의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카지노 허가 문제는 인천지역에서 얼어붙은 영종도 개발을 살릴 수 있는 활력소처럼 인식돼, 야당 소속 송영길 인천시장조차 ‘카지노 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심사 결과 발표가 미뤄지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의 인천시장 출마를 거들려고 발표 일정을 저울질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만 난무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은 지난 5일 인천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한 뒤 “박 대통령이 ‘결단을 했으면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자신이 박 대통령 측근임을 과시했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천은 엄청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중앙정부로부터 그만큼 대우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시장에 당선되면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것을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이 출마를 선언한 이후 송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주민들은 현 정권의 실세인 그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의 인천시장 후보 차출을 ‘낙하산’으로 보는 지역민들이 적지 않다. 인천 출신인 유 전 장관은 19년 전인 1995년 두 달 남짓 인천 서구청장으로 재직한 것 말고는, 고등학교 졸업 뒤 서울과 경기도에서 공무원과 정치인으로 지내왔고, 그동안 인천시장보다는 경기지사에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의 여당 정치인 가운데는 친박으로 불리는 여당 대표 황우여 의원이 있고,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도 있고,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이학재 의원도 있다. 역대 어느 정권 때도 인천 출신 실세 정치인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인천 시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은 어떠한가. 인천 송도~서울 청량리 광역급행고속철도(GTX) 조기 착공, 인천아시안게임 성공적 개최 지원, 인천도시철도 2호선 조기 개통, 장애인 평생교육관 건립 등등. 이들 사업은 하나같이 지연되고 있거나 물거품이 돼가는 양상이다. 인천아시안게임은 새누리당 소속 전임 시장이 유치해 인천시 재정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정부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지원해준 수준만큼만 도와달라고 지역사회가 간곡히 요청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9월 개막할 인천아시안게임은 개막이 코앞인데도 대통령이 주재하는 사전보고회조차 한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약한 인천 현안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추진이 미흡한 것을 두고 ‘말 따로 행동 따로’, ‘인천 홀대론’ 등의 말들이 지역에선 회자되고 있다. 현 정권 실세임을 내세우며 갑자기 등장해 표를 달라는 유 전 장관의 말을 시민들이 얼마나 신뢰할지 궁금하다. 유 전 장관은 선거 개입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 발언을 전하기에 앞서, 아시안게임을 잘 치러낼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끌어내려 힘쓰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영환 사회2부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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