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의 ‘소’는 과거 왕조시대에 임금에게 올린 글을 지칭했다. 조선시대에 언론을 담당했던 간관이나 유생들이 나랏일과 관련해 옳지 못한 일을 바로잡도록 임금에게 올린 글이 상소(上疏)다. 의견서나 품의서 따위는 상주(上奏)라고 했다.
‘소’가 특정한 글이나 문체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다.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전국시대 이전에는 상서(上書)라고 했다. 이것이 중국의 첫 통일국가인 진나라 때 ‘주’로 바뀌었다가 그 뒤를 이은 한나라 때에 ‘상소’ 또는 ‘주소’가 됐다고 한다. 한나라 때는 유교가 국학의 지위로 승격된 시기다. 유교 경전의 권위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경전 해설에 대한 재해석이 꼼꼼하게 이뤄졌고, 이를 ‘소’라고 했다. 이 소와 상소는 소라는 말의 본래 뜻(통하게 한다)을 충실하게 공유한다.
경전의 구절들이 어떤 뜻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곧 다양한 주(注, 주해·주석)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의 소가 의미를 독점해버리면 이 다양성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가장 정통한 의미’인 정의(正義)를 확정하면서도 다른 해석도 함께 인정했다. 소불파주(疏不破注, 소는 주를 깨뜨리지 않는다) 원칙을 존중한 것이다. 여러 의견을 고려해 좀 더 진전된 답을 찾아내려는 이런 태도는 인문학과 소통을 중시한 사회원리와 걸맞다. 소불파주는 스스로 빈틈을 허용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빈틈이 있어야 그곳으로 바람이든 물이든 통할 수가 있다. 소라는 말에 ‘엉성하다, 성기다’라는 뜻이 함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우위에 놓고 권위를 추구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하나만 옳다고 해서는 독단에 빠져 적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소불파주 원칙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에는 귀를 닫고 지지세력의 울타리 속에만 머물려 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겐 더 그렇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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