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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한·일의 탈핵연대 / 길윤형

등록 2014-03-13 18:59

길윤형 도쿄 특파원
길윤형 도쿄 특파원
“그럼 우리 쪽에선 곤도가 답사를 하겠습니다.”

일본의 탈핵을 목표로 2012년 3월 결성된 ‘원전제로모임’의 아베 도모코 의원(무소속·중의원)이 맥주 두어잔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곤도 쇼이치 의원(민주당·중의원)을 일으켜 세웠다. 모임 소속 전·현직 의원 10여명이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3년을 맞아 4일 방일한 한국의 김제남(정의당), 강동원(무소속) 의원을 위해 도쿄의 한 중식당에서 조촐한 환영 파티를 열어주던 참이었다. 김 의원이 이 자리에서 9월께 탈핵에 뜻을 두고 있는 일본 의원들을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자, 아베 의원이 모임의 공동대표인 곤도 의원한테 답변을 미룬 것이다. 곤도 의원은 “말 대신 행동으로 결의를 보여주겠다”며 손에 쥔 맥주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파티장 이곳저곳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근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얼마 전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군이 직접 관여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를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만남에선 민감한 한-일 간 현안과 관련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전 사고는 좌우나 민족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모임의 ‘젊은 피’에 속하는 야마우치 고이치 의원은 보수적인 성향의 다함께당 출신이다. 그러나 “탈핵에 있어서만은 한·일이 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지역구인 후쿠오카는 도쿄보다 부산에 가깝다. 일본이 아무리 원전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부산·경주의 월성·고리 원전에서 사고가 터지면 그 여파는 당장 후쿠오카까지 미치게 된다. 똑같은 이치로 중국 서해안의 원전에서 문제가 생기면 서울이 곧바로 영향권에 들 수 있다. 한·일 의원들은 “탈핵을 위한 동아시아 의원 연맹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한·일 의원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탈핵·에너지와 관련된 양국의 법과 제도를 비교해 가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갈 수도 있다. 야마우치 의원은 자신이 입법 중인 폐로 보조금 제도를 설명했다. 탈핵을 거부하는 지역의 가장 큰 반대 논리는 원전을 폐쇄하면 그에 의존해 굴러가던 지역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없애려고 폐로를 선택하는 지자체에 보조금을 주자는 게 제도의 취지다. 이에 견줘 한국엔 원자력안전법에 근거해 원전 종사자의 피폭 정보를 엄격히 기록·관리하고 있지만, 일본엔 아직 그런 제도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차이를 꼽자면, 일본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아베 정권의 원전 수출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좀처럼 그런 문제의식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본 의원들은 “안전하지도 않고, 최종 처분장도 만들지 못하는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사회에 문득문득 열패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바로 경우다.

4일 환영회를 마친 한·일 의원들은 5일엔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지역을 답사했다. 사고 직후 남동풍을 타고 방사성 물질이 날아든 이타테무라는 마을 대부분이 거주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한때 6000명에 이르던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1993년 9월 지었다는 마을 사무소도 텅 비어 있었다. “이 건물이 마을 진료소였고, 저게 노인 시설이었죠.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 와규(일본 소)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청사 앞에 선 아베 의원이 주변 건물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린 원전을 포기하지 못할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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