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사내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서툰 강도로 변신해 주인집 안방을 털려다 실패하는 에피소드로 절정을 이룬다. 사내는 바깥주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찾아가 수술비 1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터였다. 이웃의 고통을 모른 체했다간 큰 재앙을 맞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남몰래 속울음 삼키는 이웃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오늘은 몇백만원의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가야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려 한다.
상계동에 사는 유아무개(57)씨는 2012년 12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암으로 입원한 아내와 말다툼한 뒤 혼자 홧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게 화근이었다. 가산은 이미 탕진한 상태였고, 대학생인 딸의 등록금도 내야 했다. 그는 벌금 대신 140일의 노역을 택했다. 하루 몸값 5만원, 시급 2000원이다.
이에 반해 수백억원대의 세금과 벌금을 내지 않고 국외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은 미납 벌금 249억원 대신 49일의 노역을 택했다. 하루 몸값 5억원, 시급 2000만원이다.
두 사람의 몸값이 1만배나 차이나는 이유는, 벌금을 내지 않을 때 부과하는 노역의 하루 일당이 형법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판사 마음인데, 결과적으로 부자들을 봐주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5년에서 1992년에 걸친 형법 개정 과정에서 ‘일수벌금제’라는 이름의 제도 개혁을 검토한 적이 있다. 벌금 대상자의 경제 상황에 맞는 하루 벌금액을 정하는 것이다. 당시 여론도 찬성 쪽이 더 많았다. 그런데 금융실명제 등이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재산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도입이 무산됐다. 핀란드가 1921년, 스웨덴이 1931년에 시행한 이 제도를 법무부와 검찰은 여전히 시기상조라며 거부하고 있다.
일명 ‘환형유치’라고 불리는 강제노역형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역장이 따로 없다. 일반 재소자들과 같은 교도소를 써야 한다. 유씨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당했다. 일반 재소자들은 집에 전화라도 걸 수 있는데 우린 전화도 걸 수 없었다”고 억울해했다. 죄가 더 큰 징역형에는 집행유예가 있는데 벌금형에는 집행유예가 없는 것도 모순이다.
감옥에 갈 만큼 중죄는 아니라서 벌금형에 처하는 것인데,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중죄인 취급을 받는다. 이는 ‘사회 안에서의 교화’라는 벌금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학습 효과’를 높일 뿐이다. 말이 노역이지 일거리가 없어 멍하니 지내는 경우도 많다. 이참에 말뿐인 노역형을 없애고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사회내 제재로 전면 대체해야 한다.
유씨처럼 가난해서 교도소에 갇힌 사람은 2009년 4만3199명 등 한해 평균 4만명가량이나 된다. 이토록 심각한 문제임에도 제도가 바뀌지 않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과소대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혹은 모순을 알면서도 환형유치를 시행해온 검사와 판사, 법 개정을 미룬 국회의원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
<아홉 켤레…>의 문간방 사내는 도둑질을 하면서도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라며 자존심을 세운다. 도둑질에 실패한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자존심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늘 반질반질하게 닦던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겨둔 채…. 어딘가에서 진짜 강도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문간방 사내들의 마지막 자존심만은 짓밟지 말아야 한다.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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