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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과학교육과 인문학, 그리고 융합! / 윤태웅

등록 2014-03-31 18:35수정 2014-05-30 13:48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3월28일(금) <한겨레>에 ‘무의미성의 도전: 빅뱅 우주와 인간 존재’란 제목의 글이 ‘특별기고’ 형식으로 실렸습니다. 글쓴이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의 도정일 교수는, 과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도록 과학교육과 인문학이 융합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 여겼습니다. 도정일 교수도 언급했듯이, 과학도 인간이 발명해낸 거대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과학 하면 물질문명을 떠올리고 단단한 확실성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과학은 결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이며 성찰적인 과정이자 문화입니다. 다만, 과학과 기술이 하나로 묶여 늘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인식돼 온 대한민국에선 아직 그런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을 뿐입니다. 과학교육과 인문학의 융합은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정일 교수의 글에 나오는 과학교육이란 낱말의 의미가 제겐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공계 대학에서 미래의 과학기술자들에게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 전반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도정일 교수의 제언에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과학자나 공학자한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데 저도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과학방법론이나 데이터 분석·처리 같은 전통적인 논점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역사나 철학 같은 메타과학적 주제까지 과학교육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립니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들이라면 이런 견해에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의 과학교육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우주에 관한 물리 이야기를 할 때 우주 속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함께 가르치라고 요청하는 거라면, 그건 과도한, 그래서 조금은 잘못된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속 존재로서는 티끌만도 못한 것 같은 인간이 우주에 관해 그만큼 알아냈다는 건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더 놀라운 건 그걸 알아낸 방식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융합이 대세입니다. 융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결핍 모형을 떠올립니다. “이공계 사람들은 인문학적 소양이 결핍돼 있으니 보완해주자!”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 결핍 모형을 기계적으로 모아 결핍을 해소하려는 방식이 과연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진 않을 듯합니다. 자기 분야의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고 치열하게 연구하다 보면 결국 경계에 다다를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제대로 된 융합이라 여깁니다. 진정한 융합은 서로 다른 시선의 만남입니다.

(좁은 의미의) 과학교육의 문제는 외려 충분히 과학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수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과학이나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등을 잘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과학과 수학 교육이 진정한 의미에서 더 과학적이고 더 수학적이어야 한다는 게 공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저의 생각입니다.

문사철 같은 인문학(humanities)과 더불어 과학과 수학은 핵심교양(liberal arts)의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이과 학생들한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만큼 문과 학생들한테도 과학·수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과학을 인문학처럼 하는 게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을 핵심교양으로 함께 공부하는 게 답인 듯합니다. 과학과 인문학 모두 더 과학적이고 더 인문학적으로 말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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