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1921년과 22년 두 차례에 걸쳐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유언장을 쓴다. 자신이 죽은 뒤 유고를 모두 불태워 없애라는 당부였다.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지니고 있어서 생전에 발표된 작품은 중편 <변신>과 단편 <단식 광대> 등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단편집 <단식 광대>의 교정본을 붙들고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유언장에서 자신이 쓴 원고를 모두 불사르라고 했던 데 비해 두 번째 유언장에서는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 의사> 등 몇 편을 제외하는 것으로 완화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유고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막스 브로트는 친구의 유언을 곧이곧대로 좇지 않았다. 우리가 <성> <소송> <아메리카> 같은 카프카의 대표작들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브로트의 ‘배신’ 덕분인 셈이다.
막스 브로트를 괴롭혔을 고민은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외아들 드미트리의 몫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1977년 숨을 거두면서 미완성 소설 ‘오리지널 오브 로라’의 원고를 불태워 없애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상속인인 어머니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1991년 남편의 뒤를 따르면서 원고의 운명에 관한 결정권이 드미트리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드미트리는 문제의 원고를 스위스 은행에 예치시켜 놓은 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폐기와 출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론가와 일반 독자들의 의견도 양쪽으로 갈렸다. 완벽주의자였던 작가의 유언을 존중해야 한다는 쪽과, 천재의 마지막 흔적을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드미트리가 놓인 이런 곤경을 가리키는 말로 ‘드미트리의 딜레마’라는 표현도 생겨났다. 불안과 의구심이 뒤섞인 시선을 견디며 결정을 망설이던 드미트리는 그 자신 숨을 거두기 3년 전인 2009년 마침내 <오리지널 오브 로라>를 출간하면서 오랜 딜레마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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