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논설위원
이주열 새 한국은행 총재가 2년 전 한은을 떠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했을까? 이 총재는 부총재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김중수 총재에게 가슴 한켠에 묻어둔 말을 쏟아냈다. “글로벌과 개혁의 흐름에, 오랜 기간 힘들여 쌓아온 과거의 평판이 외면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 김 총재가 밀어붙인 한은 ‘개혁’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강하게 드러냈다.
그 후과로 이 총재는 사실상 내정됐던 금융계 협회장 자리를 놓쳤다. 민간 경제연구소 고문 등으로 활동을 이어갔지만 행선지가 틀어져 원망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그런 그가 1일 한은 총재로 금의환향했다. 입행 햇수로 치면 37년 만에, 그것도 한은 총재로서는 처음인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중앙은행 수장 자리에 올랐다. 취임사에서 말한 대로 “벅찬 감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총재의 취임을 축하한다. 현안을 잘 풀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으면 좋겠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와 국내 경기 변화에 따른 기준금리 조정은 물론, 가계부채 관리 등 어려운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청문회에서 어느 정도 구상을 밝혔지만 이제는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야 한다. 딱 두 가지만 묻고 싶다.
먼저 한은이 고용에 어떤 자세를 보일 것이냐다. 한은은 그동안 물가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고용은 외면하다시피 했다. 이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고용은 개개인의 능력을 실현하고 복지를 증대하는 데 직결될 뿐 아니라, 당면 과제인 가계부채 해결에도 변수로 작용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양대 설립목적으로 삼은 것은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총재는 청문회에서 몇몇 의원들이 고용의 의미를 강조하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은법을 고쳐, 물가안정 위주로 돼 있는 설립목적에 고용안정을 덧붙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주춤거렸다. 그렇기에 이 총재가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률 70%(15~64살 기준) 달성’ 목표에 어떻게 대응할지 특히 궁금하다. 현재 고용률이 64%임을 고려할 때 임기 말까지 이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노동정책 등 미시정책과 재정정책에다, 한은이 맡은 통화정책이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은, 그리고 국회가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한은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잘못된 것이다.
다음은 물가안정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다. 한은은 2013~2015년 중기 물가안정 목표를 2.5~3.5%(한해 상승률)로 잡고 있는데, 계속 빗나가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였고, 올해 상승률 전망치(한은)가 2.3%다. 내년까지 목표에 안착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청문회에서 쟁점의 하나가 된 것은 당연하다. 이 총재는 공급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며 한은으로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으나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한은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경제전망 등에서 구멍이 나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나라가 여럿이라는 말도 하고 싶겠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다. 목표 달성 여부는 한은의 신뢰가 걸린 중대 사안이다. 그래서 이 총재의 분명한 생각을 알고 싶다.
“중앙은행 총재의 가장 큰 덕목은 경제의 흐름을 내다보는 통찰력, 현실적합성이 높은 정책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옳다고 확신하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결단력(이라고 본다).” 이 총재가 청문회에서 한 이 말이 그의 실제 모습이 되길 기대한다.
이경 논설위원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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