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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침팬지 인형의 나비효과-제인 구달 박사의 80살 생일에 부쳐 / 김이재

등록 2014-04-02 19:19

김이재 문화지리학자 경인교육대 교수
김이재 문화지리학자 경인교육대 교수
세계 100여개국을 답사하고 오지를 탐험하는 것이 직업인 나에게도 아프리카는 늘 새로운 도전이다. 아프리카는 다양한 생명과 문화가 생동하고 발전의 잠재력이 큰 기회의 땅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특히 적도 부근의 열대기후 지역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체체파리, 말라리아 모기를 조심해야 하고, 지금도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에 입국하려면 황열병 예방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 항공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1950~60년대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인들조차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머나먼 땅이었고, 2차 세계대전 직후 아프리카는 가난과 분쟁에 시달리는 검은 대륙으로 인식되었다.

1934년 4월3일 런던에서 한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이듬해 런던동물원에서는 새 식구가 된 새끼 침팬지를 기념하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팔았는데, 길거리를 지나던 아버지는 동물 인형을 딸의 첫 생일 선물로 골랐다. 침팬지 인형에 매료된 소녀는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을 연구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아프리카와 동물들에 대한 책을 읽어 나갔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었지만 비서로 일하며 독학으로 침팬지 연구자로서의 소양을 쌓은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뱃삯을 모아 아프리카에 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아프리카 내륙 탕가니카 호수 근처 곰베지역에서 침팬지 연구를 시작하려 했지만 탄자니아 정부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가 보호자로서 현지조사에 함께한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닭이 어떻게 알을 낳는지 궁금한 어린 딸이 말없이 사라졌다가 한참 후 닭장 속에서 발견되어도 꾸짖지 않고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고 딸을 응원하던 여장부 어머니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덕분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고군분투하던 그녀였지만 언제 연구를 중단해야 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고졸 학력의 20대 여성에게 선뜻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구비가 끊기기 직전 기적이 일어났다.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이 그녀에 의해 포착되었고 이는 인간에 대한 정의마저 바꾸는 학문적 성취로 이어졌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홀로 연구하며 침팬지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미모의 여성 과학자에게 주목하고 그녀의 과학적 발견을 대서특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인정받은 그녀는 안락한 교수 생활에 만족하고 스타 과학자의 명성을 누리기보다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였다. 자신의 연구 대상이자 가족이기도 한 침팬지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지역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40년 넘게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헌신해 왔다.

지금도 제인 구달은 어린 시절 침팬지 인형을 품에 안고 1년에 300일 이상 비행기를 타고 거의 매일 이동하는 고단한 생활을 기꺼이 감수한다. 낡은 스웨터를 입고 홍차 한잔과 토스트 반쪽으로 한 끼를 때우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그녀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인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도, 유기견을 보호하고 소외 계층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연예인 이효리씨도 제인 구달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침팬지 인형에서 시작된 제인 구달의 나비효과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들려줘야 할 21세기 동화이다.

김이재 문화지리학자 경인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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