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야당 대표 국회 연설 때 ‘막말 공방’이 도졌다. 연설 중계방송의 ‘오프 마이크’를 통해 장내 소란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국회의 일상’이라 여겼다. ‘너나 잘해’ 외친 여당 대표, 이름에 빗대 ‘철수해라’ 비아냥댄 여당 의원의 발언은 얘깃거리로 삼기 민망하다.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보니 튀어나온’ 실수였을 것이라 덮어두고 싶을 정도이니까. 여야 서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새민련’으로, ‘새누리당’을 ‘새리당’으로 부르며 치고받는 모양도 점잖지 않아 보인다. ‘내 이름을 이렇게 불러 달라’ 하면 그 뜻을 존중하는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말 공방’의 정점은 ‘하룻강아지’를 입에 올린 여당 대변인 말이었다. 공식 브리핑을 통해 ‘초년생 당 대표가 상대 당 대표를 향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야당 대표를 ‘범에게 달려드는 하룻강아지’ 꼴로 만든 것이다.
사전은 ‘하룻강아지’의 비유적인 뜻을 ‘사회적 경험이 적고 얕은 지식만을 가진 어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하루 된’ 강아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하룻’은 ‘나이가 한 살 된 소, 말 따위를 이르는 말’인 ‘하릅’이 변한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우리 조상들은 하릅(1), 두습(2), 사릅(3), 나릅(4), 다습(5), 여습(6)…처럼 가축의 나이를 달리 매겼다. 하룻망아지, 하룻비둘기처럼 하룻강아지는 ‘한 살 된 강아지’인 것이다. ‘하루 된 강아지’의 근거로 꼽히는 ‘일일지구(一日之狗) 부지외호(不知畏虎)’는 중국 속담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이 고유 속담을 한문으로 옮겨 1820년 이맘때 펴낸 <이담속찬>(耳談續纂)이 출처다. 갓 태어난 강아지는 눈도 뜨지 않은 ‘눈에 뵈는 게 없는’ 존재인 것이니 ‘하룻’(하릅)의 뜻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살 된 강아지쯤 되어야 찧고 까불며 나댈 수 있는 것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