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논설위원
정몽준과 안철수는 사실 한동네 사람이다. 정몽준이 태어난 부산의 범일동과 안철수가 자란 범천동이 딱 붙어 있다. 이처럼 사이좋게 두 사람이 1, 2등을 나눠 갖는 게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다. 한달 전쯤 정몽준이 급상승하더니 1위 자리를 차지하며 안철수를 2위로 밀어냈다. 한때 지지율 1%였던 시절이 있었으니 ‘괴력’이다. 둘째는 재산이다.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정몽준이 2조430억원으로 1위, 안철수는 1569억원으로 2위다. 셋째는 기부 액수다. 정몽준은 3년 전 아버지의 호를 따서 만든 ‘아산나눔재단’에 2000억원을 출연했다. 석달 뒤 안철수는 1500억원어치의 안철수연구소 주식 지분을 내놓았다. 적어도 국회의원들 중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
두 사람에게 재산을 불리고 기부를 늘리는 건 쉬운데 지지율 지키기는 어렵다. 10년 사이를 두고 둘 다 뼈아픈 패배를 겪었다. 후보 단일화 때 얘기다. 지지층은 널리 퍼져 있는데 열정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가능하다. 둘 다 천문학적 단위로 기부를 해봤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그러나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는 할 수 있다. 세금이다.
세금과 기부는 다르다. 세금은 다 내지만 기부는 대부분 안 한다. 기부를 많이 하기로 이름난 미국에서도 1년 기부액이 국민총생산의 2%도 안 된다. 이걸로는 국가를 운영할 수가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혈통과 가문을 중시한다. 재산은 대물림하는 걸로들 알고 있다. 특히 재벌들은 재산의 대부분이 주식으로 구성돼 있어 이걸 기부했다가는 2세, 3세 승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세금은 정부가 필요한 곳에 쓰지만 기부금은 내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콩나물 팔고 폐품 주워서 돈을 모은 할머니들이 기부하는 곳은 으레 대학이다. 명문대일수록 들어오는 기부의 규모가 크다. 정작 기부금이 절실한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뒷전이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미국의 갑부들이 세금 더 내자고 주장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몽준, 안철수도 버핏과 게이츠처럼 ‘부자 증세’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어떨까. 당장 지방선거에서 득을 볼 것이다. 정몽준은 백지신탁 논란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된다. 안철수는 새정치의 내용을 따져묻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해도 된다. 무엇보다도 복지 확대의 길이 열리니 열광하는 지지층이 생길 것이다. 둘의 지지율에 거품이 끼었다고 깎아내리던 평론가들은 입을 닫을 것이다.
부자들을 설득하는 데는 두 사람만한 조건도 드물다. 증세 운동을 펴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친구들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고 한다. “자네보고 동정심을 베풀라는 게 아냐. 지금 같은 빈부격차가 확대되면 사업하기가 힘들어질 걸세. 위기를 미리 방지하자는 거야.” ‘계몽된 이기심’을 자극하는 거다. 이런 얘기는 처지가 비슷해야 통하는 법이다.
증세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부정적이거나 신중한 것 같다. 정몽준은 최근 인터뷰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계속 황금알을 낳게 해야지, 배를 가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거위는 기업이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의 공약을 보면 증세 없이 복지 재원을 마련해보겠다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결국은 세금 문제라는 걸 국민이 학습했기 때문이다.
정, 안 두 사람이 증세 정책을 놓고 네번째 1, 2위 경쟁을 시작했으면 한다. 그러면 3년 뒤도 둘의 지지율 경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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