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번역을 둘러싼 최근의 소동에서 그나마 의미를 찾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번역이란 게 하나의 ‘정답’을 찾는 수학적 문제 풀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지 않을까. 번역이란 언제 어디서나 생산적인 논의를 향해 열려 있는 작업이어야 하는 것. 한국 최초의 본격 번역 논쟁이라 할 양주동과 외국문학연구회의 다툼에서도 그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양주동은 향가 해독으로 잘 알려진 국문학자이지만 1920, 30년대에는 시인과 번역가 및 문학비평가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김욱동 한국외대 교수의 새 책 <오역의 문화>(소명출판)에는 양주동과 외국문학연구회의 논쟁을 비롯해 번역과 관련한 흥미로운 글이 여럿 실려 있다.
양주동은 1927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해외문학>을 읽고’와 잡지 <신민>에 쓴 ‘문단여시아관’(文壇如是我觀)이라는 글을 통해 번역 논쟁의 불을 댕긴다. 그가 이 글들에서 겨냥한 <해외문학>은 김진섭·이하윤·정인섭·이헌구 등이 참여해서 창간한 잡지. 도쿄 유학생들이 결성한 ‘외국문학연구회’의 기관지 격이었는데, 이들이 특히 주력한 것이 외국 문학 번역이었다. 그때까지 외국 문학 번역이 대부분 일본어를 통한 중역이었던 데 반해 이들은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양주동의 글은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일상어가 아닌 딱딱한 문어체와 한자어를 쓴다는 점 △축자적 직역을 고집한다는 점 △외국 어휘를 그대로 살리거나 일본식 어투를 쓴다는 점 등을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하윤·김진섭·정인섭 등이 반박 글로 맞서고 김억이 양주동을 옹호하는 글을 보태면서 논쟁은 한층 다각화한다. 서구에서도 번역 이론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2차대전 이후라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양주동과 외국문학연구회의 번역 논쟁은 매우 선구적이며 여전히 유효한 논점을 담고 있다는 것이 김욱동 교수의 결론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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