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군사안보
남한 정부는 소형 무인항공기가 북한산이라는 증거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 조사가 진실에 근접하고, 국제무대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상당히 회의적이다. 조사팀이 한·미 양국의 전문가로만 꾸려져 있기 때문에, 신뢰성에 의문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사자로 지목된 북한의 참여를 봉쇄했기 때문에, 북한과 북한 우방국의 지지를 얻어내기도 어렵다. 사실규명→배상→재발방지라는 조사 본래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조사 방법을 변경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 여파를 볼 때, 다수 국가의 참여보다 신뢰성 있는 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 사실조사(inquiry)가 대안이다.
먼저 당사국간 합의로 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남북한 전문가가 참여하고, 남한과 북한이 지정하는 동수 국가의 동수 전문가가 참여하면 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무산되었다. “무인기에서 미국·일본·중국·체코·스위스 등 세계 각국의 부품이 발견됐지만 한·미 양국의 합동조사팀으로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피의자에게 범죄증거 조사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북한의 공동조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세운 이러한 근거에는 모순이 있다. 한미만의 조사가 북한을 비롯한 반대 진영의 승복을 얻어낼 수 있는가? 범죄조사는 경찰과 검찰수사에 피의자의 자백이 더해져야 하지 않는가?
다음으로 유엔을 통한 사실조사이다. 사실조사위원회는 관련 당사국의 요청이나 유엔 단독으로 설치 및 운영된다. 국가 간 분쟁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설치된다. 이외 사안은 각 이사회 결의 혹은 사무총장의 요구로 각 이사회 산하에 설치된다. 의장은 조사위원회를 설치한 기구의 수장이 임명하며, 관련 법률가나 저명한 각료급 외교관이나 정치인이 임명 대상이다. 조사위원회 설치 이전부터 사건을 담당해 온 조사관이나 보고관이 있으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활동이 종료되면 사실관계를 통보하며, 배상과 사과 등을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헤이그협약 제9-14조에 따르는 사실조사이다. 협약에는 ①국가의 명예나 핵심이익이 관련된 경우가 아닌 문제에만 사실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며 ②사실문제 이외 법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③위원회의 구성과 결과는 강제가 아니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조사위원회의 설치와 구성은 양국 합의로 이루어진다. 과거 사례로 볼 때 조사위원은 당사국과 당사국이 인정하는 중립국 전문가 1인으로 구성된다. 물론 헤이그협약에 근거한 사실조사는 1905~1922년 4건이 있었으며, 1962년 이후 단 1건밖에 없다. 당사국 간 외교나 국제연합의 강제 및 당사국 간 합의조사를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단 남한의 거부로 공동조사는 불가능해졌고, 현재 남북한 사이의 비방전을 볼 때 대화를 통한 해결도 어렵게 되었다. 소형 무인항공기를 두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하기에는 모양새가 매우 좋지 않다. 따라서 헤이그협약을 준용하는 사실조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남한이 북의 참여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남북한이 원하는 동수의 국가와 중립국 전문가 1인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남북한은 조사 결과에 승복하는 서명을 하고, 옵서버로 참여해 협력하면 된다. 그리고 사실조사에 중재와 재판을 융합시켜,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밝히고 사과와 배상까지 결론을 내리도록 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천안함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시 남한 정부는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우방국 전문가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했다. 결과는 남한과 우방국만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고, 당사국인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재영 경남대 교수·군사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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