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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위기 대응 실패, 대통령 홍보 성공 / 박창식

등록 2014-04-22 18:42수정 2014-04-23 01:03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선장,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정부의 위기 대응 실패가 참극의 배경임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실패한 원인은 뭘까? 주의해야 한다. 일부 언론이 호도하는 것과 달리, 역대 정부가 똑같진 않았다. 많은 생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지도록 두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비극적 무능은 박근혜 정부에 특별한 것이다. 지금 대통령의 실패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세월호 침몰과 같은 초대형 재난 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상황을 총지휘할 현장 사령탑을 제대로 지정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다른 기관들이 협력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정부 여러 부처의 장관과 기관장이 관련된 상황에서 역할 분담을 지정할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이건 리더십과 의사결정론의 기본이다. 언론사에서는 여러 부서 기자들로 대형 사건 취재팀을 구성할 때, 그중 한 사람을 현장팀장으로 지명하고 다른 기자들이 그의 지시에 따르도록 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여러 부대를 섞어 연합작전을 펼 때 첫째 과제는 현장 지휘자를 정하는 일이다.

세월호 침몰 초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 과제를 놓쳤다. 대통령이 군대나 기업, 그 밖의 공공 조직에서 성장해본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수많은 정부기관이 우왕좌왕한 것은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주지 않은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박 대통령은 하지 않는 게 좋을 일은 했다. 대통령은 침몰 사고 첫날 해양경찰청장한테 전화를 걸어 “특공대를 투입해 여객선의 선실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특공대는 며칠이 지나도록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다. 지시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었을까. 대통령이 잘 알기 어려운 세세한 실행방법에 관여하고 나서면, 현장에선 부담과 혼선만 늘어날 따름이다. 어떤 정부의 최고 책임자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위기 대응이 아마추어인 것과 달리, 홍보에선 솜씨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진도 사고대책본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날 밤 청와대는 대통령이 한 학부모한테 전화를 걸어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설명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돌렸다.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실종자 가족들을 보듬어 안는다는 이미지를 확 심어주는 행보였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체육관에서는 세월호에서 구조될 때 쇼크를 입고 병원에 입원했던 권아무개(5)양이 대통령과 만나는 애끓는 장면이 나타났다. 연출된 장면이라고 믿고 싶진 않다. 어쨌든 방송용 ‘그림’ 효과 만점이었다.

언론의 생리를 잘 알면서 때로 언론을 이용하는 것을 무조건 나무랄 건 없다. 현대 정치는 미디어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홍보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생때같은 목숨이 스러지고 정부의 무능은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대통령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는 오늘의 현실은 참으로 의아스럽다. 엊그제 리얼미터란 기관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박 대통령이 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만난 다음날인 4월17일에 취임 이후 처음으로 71%라는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국민한테 결코 이롭지 않은 결과다. 대통령의 국정 관리 ‘실체’가 ‘여론 관리’를 통해 가려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인기가 대통령 자신한테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사정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이 다시 위험해진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 포커스]촛불 시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한 아이라도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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